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메이트북스 클래식 1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강현규 엮음, 이상희 옮김 / 메이트북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말이 오면 항상 기본적으로 드는 마음이 있다. 어린 시절엔 지난 1년의 게으름에 대한 가벼운 반성과 곧 인생에 뭔가 변화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가득 찬 새해의 다짐을.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는 인생의 고통과 힘듦에 대한 한숨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인 새해. 한숨과 새해 사이에서 느끼는 심연의 그것에 이름을 붙이면 불안이 아닐까? 이런 불안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어느 순간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잃어버린 채 정처 없이 걷기만 하게 된다. 이런 걸 나는 심장이 뛰는 좀비 같다고 표현한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순간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돌아보며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매년 연말마다 이 상태를 반복하고 있으며 처음에는 무척 혼란스러워 그냥 손을 놓은 채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젠 뭔가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책 한 권, 좋은 장소, 기억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영화를 찾아서 보는 방법을 찾았다. 작년엔 열 번도 넘게 본 영화를 꺼내어 봤는데 이번에는 다 알지만 살면서 놓친 삶의 지혜들을 잔뜩 머금은 책을 선택했다. 바로 살아갈 힘을 주는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이다.

개인적으로 서양 철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지 않을까? 학교 다닐 때부터 암기 과목에 취약했던 나였기에 외워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이미 공기 속으로 날아간 외국인의 긴 이름은 아무리 되뇌어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아마 조심스럽게 예상하자면 나와 같은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유명인의 이름이 붙어 있는 책이면 바로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이번 연말엔 마음이 너무 공허해서인지 홀린 듯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작은 목소리로 고백하자면, 생소한 나머지 처음 책이 왔을 때 책을 마주하고 앉아 겁이 나서 한참 동안 첫 장을 펴지 못했다.

아마 제목만 듣고 나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이 책은 어려운 이론을 해석해 놓은 그런 유의 책이 아니었다.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가볍지 않은 성인용 명심보감 혹은 성인용 탈무드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주제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비슷한 책이 많다고 하겠지만 차이점이 있다. 꽤 직설적이며 현실적이라는 것. 아름답게 포장하고 착하게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즉, 인류의 혹은 공동체의 행복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 자신의 행복만을 위한 촌철살인 같은 말들이 나열되어 있다. 사람을 MBTI로 구분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굳이 구분을 해보자면 한 줄 한 줄에서 T 성향 특히 냉철한 NT 적 성향이 많이 드러나서 만족스러웠다. 사실, 읽으면서 굉장히 끌렸는데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서평을 쓰면서 비슷한 성향이 그 이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인간관계였다. 노력을 해도 묘하게 어긋나는 오해로 인하여 언제나 상처를 많이 받았고, 해답을 찾기 어려워 허덕이는 편이었다. 당연하게 대인 관계를 잘 맺어보기 위한 책도 여러 권 읽어보았다. 대부분의 책이 타인에게 이렇게 대하라는 말이 많았는데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생각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에 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서술하였다. 이런 특색으로 인하여 현대의 개인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매우 매혹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사람을 견디는 법을 배우려면 무생물을 상대로 자신의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무생물은 역학적·물리적 필요에 의해 완강하게 우리의 행동에 저항한다. 그러한 기회는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인내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행동에 분개하는 것은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길 위에 굴러온 돌멩이를 보고 화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그들을 바꾸지 않을 것이도, 그렇게 그들을 이용할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p.165

이 말을 오해할 수도 있어 잠깐 덧붙이자면, 이 말은 타인을 냉혹하게 대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도 특색을 가진 하나의 인간이며 타인도 그들만의 개성과 능력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이기적이기에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보다는 다름에 거부감을 일으키며 다름의 간극이 커질수록 다툼과 싸움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간극이 크고 그 개성이 한심하거나 최악이거나 우스꽝스럽다고 배척하고 화내고 싸우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능력과 특성을 잘 찾아내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라는 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본문의 글과 나의 해석 글 사이의 차이만 보더라도 얼마나 독자로 하여금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삶을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서술해 놓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뒤로 넘어가면 학생과 교사, 독서, 교육, 생존, 나이 먹음, 죽음, 인생의 본질에 관련된 내용까지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하며, 모르면 마음의 가난을 경험하게 되는 내용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심리적 공허함, 고통, 뭔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인한 한숨, 급변하는 미래로 인하여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팬데믹의 제한이 풀리면서 발생한 혼란, 어려워진 경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 등으로 얼룩진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읽으면 더 의미가 깊을 것 같다. 2024년을 고통으로는 조금 더 가벼워지고, 자신감과 자존감으로는 꽉 차 묵직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실천이지 않을까? 2024년은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나의 힘으로 내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