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간직하고픈 시 - 개정판
윤동주 외 지음 / 북카라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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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생 시집을 읽어본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입니다. 딱히 시집에 대한 매력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학생 때는 한동안 유쾌한 시집이 친구들 사이에서 광풍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던걸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때도 딱히 시에 대한 호기심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40대가 되어서 무슨 시집이 땡기나 싶긴 한데...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갑자기 철학 책이 보고 싶어지는 것처럼 어느 날은 시집이 읽고 싶어지는 때가 오나 봅니다. 감성 같은 거 메말라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은 펑펑 울고 싶기도 하고 어느 날은 멍해지기도 하는 하루하루에 무언가 비어버린 가슴속을 채워줄 그런 게 필요했던 거 같습니다.

오늘은 <평생 간직하고 싶은 시>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개정판이란 글을 보니 언젠가 한번 나왔던 것인가 봅니다. 시에 대해선 완벽한 문외한이기에 개정판이라도 좋습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표지 그림이 너무 예뻐서입니다. 수국과, 이름 모를 꽃, 열매,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와 새들. 물고기까지? 구성이 참 다양한데다 수채화 톤으로 그려진 그림이 너무 서정적이고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첫인상부터가 이리 예쁘고 아름다운데 내용은 또 얼마나 따듯할까라는 생각에 반갑게 페이지를 넘겨보았습니다.

책날개에 가득 들어찬 작가들의 이름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그제야 제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생 간직하고 싶은 시들의 모음집이었던 겁니다. 차라리 잘 되었지요. 한두 사람 사실 제가 시인을 아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시인들의 액기스만 모아 둔 책이라니 오히려 더 감사합니다.

작가들을 쭉 살펴보니 눈에 익은 사람도 몇몇 보이네요. 김소월, 윤동주, 이상, 윌리엄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등등. 이보다 세배는 더 많은 작가들 이름이 나열되어 있지만 처음 만나는 분들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이 되었습니다.

예쁜 민트색 간지가 있고 수줍은 속옷을 입은 양 미색의 종이를 넘기자 제목과 함께 나비와 새들이 반겨줍니다.

차례를 보니 신기하게도 1챕터의 제목이 마치 공책에 정성스레 손글씨로 눌러쓴 듯 적혀있습니다.

1.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그러고 밑으로 수많은 작품들의 제목이 나란히 적혀있습니다. 이게 또 상당히 가지런하여 보기가 좋습니다. 일장을 넘겨서 보니 중간에 <낙엽>이란 제목의 유치환 작가님의 시구절이 첫 번째 제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군데군데 시는 영 몰랐다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접해보았나 봅니다. 눈에 익은 글귀들이 보일 때마다 앗! 이게 시였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봄에 꽃들은 세 번씩 핀다

-김경미-

필 때 한번

흩날릴 때 한 번

떨어져서 한번

나뭇가지에서 한번

허공에서 한 번

바닥에서 밑바닥에서도 한 번 더

봄 한 번에 나무들은 세 번씩 꽃 핀다.

(21p)

이번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구절입니다. 꽃이 세 번씩 핀다는 글귀가 어찌나 마음에 와닿는지요. 보통 인생에 꽃 같은 시기는 한 번뿐이라 말하지만 세 번씩 피어오르는 그 글귀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피고 흩날리고 떨어져내리는 그 모습까지도 활짝 피는 것으로 표현하는 게 마치 우리네 인생과 같이 느껴집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이번에 별 헤는 밤의 전문을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아마 학생 때 읽었지만 기억이 안 날지도 모릅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불혹의 나이가 되어 읽는 별 헤는 밤은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학생 시절처럼 구절마다 단어마다 뜻과 의미를 알아보고자 공부하며 느끼는 것이 아니기에 있는 그대로 나의 느낌을 온건히 느낄 수 있어서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시를 읽는 감성인가 싶기도 합니다.

얼마나 시에 무관심했으면 제가 가장 사랑하는 희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이제야 알았을까요? 덕분에 소네트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조만간 읽어보고 감상을 적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정지용 님의 향수가 가요인 줄 알았건만... 시였네요... 세상에... 저의 무지함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책으로 많은 시들을 알게 되어 너무나 기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진정 시는 슬픔과 때로는 기쁨, 그리고 사랑스러움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는 아름다운 글귀의 모음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서정적이며 따듯한 감성을 주는 그것, 시는 나의 메마른 감성에 빚 줄기와 같습니다. 마치 삶의 바다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작은 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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