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침팬지가 하루 종일 자식들 옆에 지켜 서서 견과류 깨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필요할 때에만 집중적으로 유도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중략) 엄한 훈련을 통해서 통제당하면서 습득한 행동은 유연하지 않다. 유연성은 영장류 지능의 핵심이다. 유연성이야말로 침핸지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배운 기술을 전혀 다른 상황에 적용하도록 만든다. (중략) 그러한 언어적 도구를 다른 사회적 상황에서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르치다'의 의미에 대해 내 견해를 쓴 적이 있었다.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Teacher' 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평행한 시소위에 올려진 채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Tutor'를 더 선호하는 입장이다. 이 부분도 이와 비슷했다. 가르침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옆에서 지켜봐주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교육에 관심이 있고 교육 부분 중에서도 아이들의 개성,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 공부를 즐길 수 있는 마음에 관심이 더 깊은 내게 이 책에서 만난 교육의 일부는 더 반가웠다. 엄한 훈련으로 순간적인 부스터를 일으켜 좋은 효과를 단기간에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간의 불은 오래가지 않는다. 모닥불을 지피듯 나무를 넣을 때도 하나씩 정성스레 넣을 때와 대충 던져 넣을 때의 불길이 다르듯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은 더 그렇다. (이 책을 읽은 후, 이제 우리 아이들과 침팬지로 주어를 변경해야하는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부터 인간우월주의를 당연시 여기지 않았나싶다. 딱히 인간우월주의를 지니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은연중에 당연시되고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동물에게 잘해준다고해도 그건 같은 생명체이기에 잘해주는 것이지 우리와 동일한 사람으로 보거나 우리보다 더 대단한 종이라고 평하지는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