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읽는 재클린의 가르침 - 다시 태어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지적인 대화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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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회학을 구원한 히로인'을
오롯이 소개하고 싶어 제시한, '재클린 사회학'에서 출발한다.

제자가 된 심정으로, 그리고 재클린 사상의 계승자 측면에서
이 세계관을 비춰주는 상속자와
불안과 갈등에 놓인 20대를 대변하는 학생의
담화 형식으로 펼쳐지는 [서른에 읽는 재클린의 가르침]

전에 철학자와 아이와 관점에서 풀어낸 책을 접했기에
이번에도 풀어쓰기 위함인줄 알았다.

이제야 보인다,
이 책은 담긴 내용부터 서술법까지 재클린 (케네디)를 담아내었음이.
서른,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새로운 도전의 시작

절망을 증명하는 시기와 다름없던 20대의 불확실함을 지난
성숙함과 책임감이 더해지는 시기.
-/감사의 말/ 중

재클린은
'절제'된 태도와 '다른 이를 존중'하는 매너,
그리고 섬세한 '배려'심을 지닌 인물이다.

중용이 어렵다고 하듯, '절제'를 지키기 힘들기에
이 부분에서 나도 그녀에게 빠지던 찰나 곧바로 '존중'까지 지녔다고 하니.
30에 그녀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하구나 싶다.
서른.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 안정화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는 나이라 30을 부르는 줄 알았다.

그 부분도 있겠지만, 책을 다 읽은 후인 지금에는
정말 불안정함을 잔뜩 느낀 후 살포시 실눈을 뜰 때에
비치는 한 줄기가 서른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수저 계급론을 부정하며 시작하는 첫 만남,
'현실'을 강물의 흐름과 잔잔한 멈춤, 무엇으로 보느냐로 포문이 열렸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강물의 흐름과 멈춤을
현실에 빗대어 표현했다.
수저 계급론 또한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수저 계급론.

금수저, 은 수저, 다이아 수저 그리고 우리 대부분이 속하는 흙 수저까지.

하다못해 포털 사이트나 sns를 넘어 언론매체의 보도 제목에도 사용되는
수저론에 대한 부정이라.

수저론에 별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 강한 부정이 아닌가 싶었었다.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와 먼 나라 이야기인 다이아 수저, 금-은 수저까지만
상속세가 상관이 있을 것 같았다.

역사적 상속이 아닌,
자본주의 속 물질적 상속이기에.

그러나 재클린은 이 가족으로 끊기는 개념을 전범위 사람으로 확장하고
(반사회적으로 평받던 당시,
게이 친구인 빌링스도 현관에 나타났을 적부터, 그녀의 가족이었으며
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모두가 가~족이 될 수 있고, 그렇다고 한다.
하다못해 그녀의 후배라고 볼 수 있는 힐러리도 그녀로부터 상속을 받았으니 말이다.)

부모님께서 우리 아이가 잘 할 거야라는
작은 희망 또한 희망이라는 상속 개념으로 보았다.

상대적 박탈감은 어느 수저에 속하든, 속하지 못하든(수저계급론 존재 시/그녀는 없다고 봄.)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재클린의 정신을 계승한 상속자는
상속자 정신은 공평하며 없는 사람은 당당하게,
가진 자는 겸손하게 만드는 사상이라고 표했다.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을 진정히 아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상속'이란,
인생의 자율권 승계로서 타인으로부터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가 삶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생각해오던 상속과 전혀 달랐다.
'내가 쓰는 상속'이라.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부드럽지만 단호히 거절해도 괜찮다는 다독임.
강단 있지만 부드러운 재클린의 정신이 내게도 계승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너무 '나'에 매몰되면 곤란하다.

진정한 상속자 정신이란,
나만의 꿈이 목표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책임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재클린의 할아버님으로부터 출발해 재클린으로 이어져온 이 상속자 정신.

후에 한 역사학자로부터
그녀의 집안이 실은 부유한 프랑스 가문이 아니었음을 알고
친지로부터의 지탄도 피할 수 없을 때에

그녀가 무너지지 않은 데에는 '상속 자본'이 있었다.
상속 자본을 다루기 앞서,
잠시 이런 그녀의 상속을 승계 받은 임하연 작가님과
받고자 하는 나는 어떤 승계법으로 보충해야 할까 살펴보자.

첫 번째는 독서다.
하루에 한 권 정도는 우습다며
건축서, 역사서, 전기를 주마다 8-10권을 읽었다고 불리는 재클린.

불변하는 운명이 아닌, 변화의 렌즈를 장착하는 첫 시작이었다.

다음으로는 대화이다.
자신의 저서를 한 권도 남기지 않았지만
예술가와 지식인들, 특히 '역사학자'들과 끊임없는 지적 대화를 나누었다는 그녀.

그녀의 구술 기록이
이 책의 서술법에도 영향이 된 거 같다고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짐작해 보았다.
상속 자본은 '물려받는 것을 찾는 능력'이다.

제한된 믿음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는 것과 달리

믿음의 결과로 나오는 행동을 찾는 것.

재클린과 케네디가 대중성과 스타성을 갖게 된 데에도
그녀의 역사 거인 탐독과 그들의 이념 물려받기가 크지 않았을까 싶다.

1947년, '올해 사교계의 새 얼굴'에 선정되기도 한 재클린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눈에 띈다.'라고 소개되었다.

타고난 운명에 억압되고 굴복하여 고민을 생성하고 주저앉음이 아닌,
능동적으로 움직인 그녀였기 때문이다.
짐작했다시피 상속 자본은 돈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재클린은 돈이 자유를 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라는 말과 동시에
우리가 돈으로부터 사고자 하는 것이 상대의 배려, 예의, 존중에 대한 그리움
이라고 정확히 짚어준다.

사실 재화 없이도 모두가 존중하고 배려하면 되는 그 기본이 지켜지지 않아
허상의 물질을 추구하고 있었구나 싶어 잠시 멍해졌었다.

더불어 스스로만 구하려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다며
홀로만 살아남는 것을 반복해 제외했다.
돈에 집착하는 삶을 지닌 자는,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인데 이와 반대되는 삶을 바라보며

오직 돈을 믿고 사람에게 기대지 못하는 결국 자신만이 홀로 남겨지는 사랑을 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을 보고 꿈꿀세도 없이,
타인을 이용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며, 효용 가치가 떨어질 경우 가차 없이 배신한다.

케네디와 재클린이 서로의 상처를 보고 연대를 맺었는데,
이때의 연대는 이해관계를 기반했기에 견고하지만
한 번 무너질 경우 서로에게 지옥이 된다.


이런 연대를 꿈꾸지 못한 채로 타인을 이용하고 버려가며

돈에 매몰되어 스스로만을 사랑하는 삶이 아니길.

바라본다.


'내 능력에 대한 과신'은 저 멀리하고 

'무능력한 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것.

: 나 또한 그들이며, 그들이 될 수 있었으며.

내게 주어진 것들은 내 것이 아닌 선대의 유산이자

타인과 향유해야 함을.

두려움 대신,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

시작할 것을.

살아가는 매 순간이 서로 다르며

좋고, 나쁘고, 기쁘고, 어렵고, 비극적이며

상호 간에 사랑하고 행복함이 모두 담긴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체로 얽매인 '인생'을.

좋고 그르다로 구분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는 말을 전해주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상속 일지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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