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취미를 즐기지만, 잘하지 못하면 취미로 두지 않는다.
그게 서핑이다.
잘하지 못하고, 서핑 보드 위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
장판이라도 되면 내 속은 울고 울어 바다를 이룰 지경이다.
롱보드는 또 왜 이리 긴지.
짧은 다리에 혼자 들지도 못해, 도움이 필요하다.
'아 이건 내 취미가 될 수 없어!'를 외치며
가끔 즐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가끔을 위해 장판일 때 즐길 수 있도록
어릴 적 배우고는 다 까먹은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그 잠깐을 위해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내가 잘 못하지만 그만큼 즐거웠기에.
행복했기에.
어쩌면 완벽을 바라기 앞서
일상에서도 루틴화되지 않으면 아파있거나 무너져있는데
이 또한 완벽 추구자의 극한 게으름인가 싶다.
(추가로 작가님의 하고 싶은 걸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몹쓸 병.
동일한 병명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괜히 정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