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도 <자화상>과 마찬가지로 고흐의 여인을 묘사한 작품과 잘 어울렸다.
거의 일치에 가까울 정도로.
<돌아와 보는 밤>은 내 눈에는 화려한 색상으로 비친 고흐의 <Vincent's Bedroom in Arles, 1889>와 맞지 않으리라 여겼었다.
읽고 나니
아... 불을 끄옵고 낮의 연장으로 이어지는 모습에 연신 고개가 끄덕인다.
마루의 색 변화도 이내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 속에 젖어 있는 시구에 연결되어버린다.
모든 걸 엮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이번 열두 달 시화집 덕에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 등
바로 옆에서 같은 것을 묘사함이 아닌가 싶을 정도여서
윤동주 시인과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설명란을 다시 들락거렸다.
윤동주 시인은 1917~1945의 시대를,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1853~1890을 살았으니
동시대가 아니구나 하며 돌아왔다.
<십자가>, <슬픈 족속>, <길>
<내일은 없다-어린 마음이 물은>, <식권>, <빨래>
<가을밤>, <참새>,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종시>까지
많은 부분이 바로 연이어졌던 시화집에서
유독 깊게 남은 작품들이다.
<종시>
종점이 시점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
사건이란 언제나 큰 데서 동기가 되는 것보다 오히려 적은 데서 더 많이 발작하는 것이다.
...
"그래 책장이나 뒤적뒤적하면 공분 줄 아나. 전차간에서 내다볼 수 있는 광경, 정거장에서 맛볼 수 있는 광경, 다시 기차 속에서 대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생활 아닌 것이 없거든."
이 꾸러미를 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뜯어보기로 한다. 늙은이 얼굴이란 너무 오래 세파에 짜들어서 문제도 안 되겠거니와 그 젊은이들 낯짝이란 도무지 말씀이 아니다. 열이면 열이다 우수 그것이요, 백이면 백이 다 비참 그것이다. 이들에게 웃음이란 가물에 콩싹이다. 필경 귀여우리라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의 얼굴이란 너무나 창백하다.
...
이윽고 터널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데 거리 한가운데 지하철도도 아닌 터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이 턴러이란 인류역사의 암흑시대요, 인생행로의 고민상이다.
그의 필력에 그림이 펼쳐진 듯했다.
이렇게 표현하지 못한 나에게 책 뒤표지는
그림은 말 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라고 알려준다.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124편)와
별을 그린 화가 빈센트 반 고흐(129점)와 함께
더불어 반가웠던 <On the Outskirts of Paris, 1887> 기록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