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필력은 없지만 잘 쓰고 싶습니다. 말 그대로다. 글을 잘 쓰고 싶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하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너 참 똑똑하다. 말 잘한다.'라는 소리에 그런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어렸다. 그저 타인의 눈에 말 잘한다. 글도 꽤 쓰네~라는 말에 끄덕이며 내 장점으로 여기던 적이 있었다. 과거. 과거에 머무른다. 지금은 아니기에. 정확히 말하면 부정하게 된 지 꽤 됐다.
구분선 위에도 적어놓았지만, 난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고 쓴다. 정확히는 의식의 흐름 그대로를 입을 통해 뱉고, 하얀 백지 위에 써 내려간다. 써 내려간다에서 내려간다에 더 치우쳐진 느낌으로.
토론에 참여하거나 참다가 상대의 마음에 상처가 생길 수 있는 말을 뱉어야 할 때는 나름 구조가 잡혀서 말이 퍼지는 듯하지만 평소에는 의식의 흐름, 그 자체다. 이것저것 지식 쇼핑을 좋아해서 의식이 흐르는 데로 그 조합들을 아무렇게, 틀 없이 내뱉어도 '말 잘한다~ 똑똑하다!'라고 바라봐 주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오래 본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내가 얼마나 무식하게 말하고 쓰는지 안다. 아는 거라도 없으면 더 무식해 보였겠지. 지식 쇼핑이 책으로 단정되어버린 요즘에는 그렇게 보일 테다.
처음 적어보는 나의 치부다. 글에 나의 생각만 담아봤지 내 부끄러움은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쑤였다. 꺼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신이 내린 필력은 없지만 잘 쓰고 싶습니다의 저자 심원 선생님의 배움을 얻기 전까진 말이다. 노란 형광펜과 책을 들고 다닌 데는 책이 지닌 여운이 있었다. 일이 많아서 책을 잘 못 읽었는데도 빨리 다음 배움을 얻고 싶었다. 양옥순 할머님의 <양옥순 호강하네>를 시작으로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정의(작가님의 표현을 옮겨 적고 싶은데 표절 부분을 읽고는 망설여지기에 '새로운 정의'라는 표현으로만;) 그리고 필사하고 싶은 말씀들이 담겨있었다.
글쓰기를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내 옆의 사건을, 오늘 내가 본 일을 그저 기록하고 가상의 인물인 빙봉과 함께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형식을 취할 것을 권해주셨다. 우리의 일상이 곧 글감이니 평범해도 그 안을 들여다보아 다른 것과 차별점을 찾으면 되니 일단 사실을 기록하라고 하셔서 메모장에 글감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작은 변화지만 후에 글을 쓰기 위해선 큰 도움이 될 거다. 더불어 나만을 위한 글이 아닌 타인이 공감해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솔직함'이 담겨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나의 치부를 들어낸 거다. 글감이 너무 없으면 치부라도 써보라고 하셔서.
사실 글감은 구했지만 이 책의 도움으로 내가 지닌 부끄러움을, 남을 겨누는 입장 말고 화살촉을 나로 돌려 적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에 신이 내린 필력은 없지만 잘 쓰고 싶습니다 감상문 편에 적고 싶었다. 반디앤루니스라는 도서 판매 사이트 리뷰칸에는 내가 지닌 책인지, 내 인생의 책인지 체크하는 공간이 있는데 그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은 내 인생의 책이다. 이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까울 정도다. 기존의 글쓰기 책들과 달리 실제 글을 씀에 있어서 변화를 가져다줌은 물론이고 그 이외의 삶, 색안경, 가치관의 변화를 배운다. 배움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책도 가벼워서 미세먼지가 좋음 수치를 보이는 날에 맑은 공기를 만끽하며 읽으면 힐링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