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 꼼지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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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울에 폭 빠져 지내던 적이 있다. 당시 거주하던 곳과 가까웠던 점도 있지만 본가가 서울이 아니기에 가까이 있을 때 서울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었다. 여행을 할 때면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돌아다닌다. 내 눈앞에, 내 프레임 안에 비치는 새로움에 감탄하며. 내게는 새로움인데 친구와 함께 다녀온 이태원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공사장에 이런 거 많은데, 이런 거 찍는 거 좋아하는구나/ 이런 건 잘 볼 수 있을 건데...^^' 내게는 새로움이었는데 친구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이 말을 듣고 수원을 향해가는 1호선 지하철에 두 다리를 튼튼히 지탱해놓고 생각에 잠겼었다.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새로움은 타인에게 익숙함으로 다가갔겠구나 했다. 언제부턴가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지 않은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부터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서울이 답답했다. 높고 탁하고 막히고. 지금 살고 있는 곳도 내 삶을 얹기 전까지는 문화시설도 없고 너무 한적한 데다 건물들도 오래된 심심한 곳으로 생각했는데 자전거 한 대에 몸을 싣고 이곳저곳 구석구석 다녀보니 이곳의 매력에 푹 빠졌나 보다.

오히려 서울에 약간의 거부 반응이 생겨버렸으니 말이다. 원래 서울 근처에 가면 서울에 오래 머무는 편인데 이젠 서울에서의 약속을 행하고는 그 자리를 빨리 회피해버렸던 것 같다. 그곳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내 모습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일단 다시 거주하는 곳으로 재빨리 돌아왔다. 그런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친구들은 보고 싶어서 시간을 내려 해도 서울이라는 공간에 가기 망설여져 시간 조정도 하다 말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서울 백 년 가게라는 제목으로 서울의 오래된 곳을 소개해주는 책을 발견했다. 바로 서평단을 신청했고 운 좋게도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서울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서울에 다시 올라가서 즐길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다. 서울 백 년 가게 덕분에 숙소까지 정했으니 예전에 줄곧 갔던 서촌에서 편히 일정을 시작할 수 있을 거다.

서울 백 년 가게라는 제목이기에 백 년이 지난 공간이 서울에 아직 남아있구나 하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100년이란 시간을 지닌 가게로 구성되진 않았고 이를 바라보는 가게들도 담겨있었다. 그들의 전통과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함께 100년을 응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만약 100년 가게만 조사했다면 그 수도 적었겠지만 다양한 가게들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한겨레 분들과 서울시의 미래유산 작업을 진행하신 분들, 작가님께 감사했다.

무엇보다 이인우 작가님께서 '책 속에 오류가 있다면 모두 필자의 책임이며, 미덕이 있다면 모두 백 년 가게를 낳고, 키우고, 이어가고 있는 분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덕에 따스함을 안고 시작한 이야기는 초반부에서 내게 꽂혔다. 물론 뒤 내용에서도 클림트, 용금옥, 을밀대, 황해, 신사복 청기와, 홍익문고, 열차집, 비원 떡집, 동부 고려 제과, 미네르바, 올댓 재즈, 동흥관, 브람스, 세실극장 등이 있지만 (이번 서울 방문 시 다녀오고 싶은 곳을 나열해둔 거다...^^) 그중 보안여관이 이 책을 통해 얻은 보물처럼 가장 소중했다.


보안여관과 관련된 내용 중 '도시를 보면, 개발과 재생의 전략이 소멸과 생성의 방향을 좌우한다. (중략) 결과가 그 도시의 일상과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화 선택은 결국 인간이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행위인 셈이다.'라는 글이 있다. 도시 재생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이 일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 서촌을 내 집처럼 방문하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 거주하시는 분들, 장사하시는 분들의 생각도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고 3일 후에 또 방문하여 금세 바뀌어있는 서촌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도 있다.

서울에서 내가 지닌 추억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때는 젠트리피케이션도 서울시 몇 공간에서만 이루어지고 젠트리피케이션 자체가 흔하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한때 일어났고 다른 지역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한 티비 프로에서 스쳐지나듯 나온 젠트리피케이션 정의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내 생각으론 말도 안 되는 정의였다. 이 개념을 접하고 도시재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던 중 이 글을 읽었기에 더 와닿았었다. 우리가 선택한 것으로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점. 어쩌면 같은 개념인 도시재생을 다르게 해석하고 행동에 옮긴 서울과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의 차이가 아닐까 싶었다. 이곳에 살면서 내 삶의 방식도 완전히 변했으니 말이다.

갤러리, 서점, 주점, 게스트하우스, 화원이 함께 있는 20세기와 21세기의 유물이 공존하는 보안여관은 종로구 효자로에 위치해있다는 말에 혹한 후부터 계속 마음이 갔다. 안에 위치한 시설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 공간의 이야기가 좋았다. 문화적 토대 위에서 바라보고, 거주하고, 먹고, 읽고, 걷기를 제안하는 문화예술 공간이자 글로벌 네트워크를 엮어가는 문화 예술 플랫폼이라는 보안 1942. 이곳을 만들어낸 최성우 선생님의 마인드가 보안 1942로의 발걸음을 서두르게 했다.

1936년 서정주, 함형수 등이 장기 투숙하며 김달진, 김동리, 오장환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낸 곳이 어딘지 아는가. 보안여관이었다고 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곳은 도시재생이라는 말에 그저 무너져 높은 건물로 대체되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무엇보다 최성우 선생님께서는 보안여관이 그에 의해 발견된 게 아니라, 최성우가 보안여관에 사로잡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대목에서 보안 1942 숙소를 알아보게 되었다.

보안 1942뿐 아니라 유명했던 용금옥을 지나가며 여긴 맛있나 보다 하며 지나갔던 나의 무식함에 아쉬워하며 읽었던 그곳의 이야기, 손님이 살리고 서점 주인이 함께 버티는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 서점의 이야기가 보안여관처럼 다가왔었다. 물론 다른 곳도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방문하려고 리스트를 작성해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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