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마지막 공부... 퇴계 이황 선생이 새벽마다 탐독했다던 책. 무엇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하며 읽게 된 다산의 마지막 공부였다. 유배 생활이 잦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손에서 붓을 놓지 않으시며 하던 숱한 공부의 마지막이라. 이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책의 목차를 접하기도 전에 풀렸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읽게 된 계기가. '마음'이었다. 그 답. 그의 마지막 공부가. 

 마음이라. 마음. 내 몸속에 담겨있음에도, 이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알길 없는 게 마음이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가끔 내 조종을 들어주긴 하지만 몸에 밴 냄새처럼 자신이 내키는 데로 움직여버리는 아이이기에 평소 잦은 대화와 훈련이 필요했다. 운 좋게도 엄마 덕에 어릴 적부터 마음공부에 대해 보고 자랄 수 있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마음공부를 스스로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마지막 공부가 마음이라는 사실에 아. 그는 이 중요한 걸 마지막에 알았구나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다 읽은 지금에야 그가 마음을 마지막에 알아준 덕에 내가 이 책을 집어 들 수 있었고 고전으로부터 마음공부에 관한 다른 차원을 경험할 수 있었구나 하며 감사하는 중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심경>>을 펼쳤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새벽마다 탐독했다던 책 또한 <<심경>>이었다. 그의 붓 끝에서 이루어지던 평생의 학문을 <<심경>>으로 매듭짓고자 했다는 다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자 학문의 끝, 결론이라고. 어쩌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당연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아는 바와 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기에. 그리고 이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든 요즘이기에 다산의 마지막 공부가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라 생각되었다.

 고전을 옛 책이라 멀리 두고 있는 우리에게 편안히 접할 수 있도록 해준 덕분에 욜로(yolo), 카르페디엠의 제대로 된 정의부터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처세술, 그리고 pc방 살인사건에서도 보았던 분노 조절에 관한 이야기, 욕심에 관한 생각, 관점의 변화. 그 이외에도 여러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심경으로 제한한 듯했지만 이 안에 세상이 담겨있음을 보여주었고 나를 그 안에서 경건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편히 읽혔고 본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자 글만 읽지 머릿속으로 별로 들어오지 않아서 같은 부분을 3번 반복해 읽었다. 이 책이 나에게 어렵구나 하며 나의 무지함을 탓하며 반복해 읽었더니 세 번 만에 안 들어오기에 책을 덮고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머리로 이해하려 했구나. 심경을. 

 아무리 쉽게 와닿는다 해도 심경을 기반으로 둔 내용인데 난 그걸 마음으로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머리로 지식만 얻으려 했다는 반성과 함께 이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는 생각과 편안하게 비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자 허리가 절로 곧아지고 말 한마디도 조심히 뱉게 되었다. 책이 내게 변화를 주는 걸 알지만 이렇게 책을 읽으며 절로 경건해진 적은 처음이었다. <<심경>>을 조금씩 나눠 각 페이지별로 이야기를 덧붙여준 작가님 덕분에 더 편안히 그리고 깊게 <<심경>>을 탐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마음가짐을 고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욕심'에 관해서였다. "욕심부리지 마라." 혹은 "욕심부려도 돼~"와 같은 말로 욕심을 들었는데 그 욕심을 나쁜 행위로 생각해왔던 내게 욕심을 가지는 자체는 자연스러운 힘이라는 부분은 버스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있는 듯한 멍함을 선사했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욕심을 부정으로만 보았던 내게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그다음 문장을 읽고서야 안심을 했는데 욕심을 가지는 자체는 자연스러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무조건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욕망에 따라잡힌 인욕이 된다. 욕심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는 말로 해석했기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옮기기에는 벅차 짧게만 남겨놓으려 한다. 인상 깊었던 부분에 관해. 

지도자의 자세_입, 태도와 관련하여 : 솔선수범.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흰 옥구슬의 흠은 갈아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흠은 없앨 수 없다 (백규지점 상가마야 사언지점 불가위야), 가볍게 말하지 말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내 혀는 아무도 잡아주지 못하니 해버린 말 쫓아가 잡을 수 없도다.' 이 부분을 읽고 입 밖으로 뱉는 말에 더욱 신경 쓰게 되었다. 그렇다고 입 발린 소리를 한다는 게 아니라 평소와 같이 진심을 다해, 진심만을 말하되 그 진심에서 생각의 변환을 가해서라도 흠을 없앨 수 없는 (중요한 데에 이중 부정을 많이 한다고 한다.) 내 혀의 끝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말을 뱉으려 한다. 뱉은 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정약용의 고해>>중
'우리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만, 시대가 나를 휘감고 내가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삶에서 비겁해질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화해하는 것이다.'
: 모든 비겁함에 소리 낼 수 없지만 그 비겁함에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올라있다면 이렇게 비난할 수 있을지, 내가 저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먼저 생각하라는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던 파트였다. 이 말과는 다른 의미였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 와도 연결되었다. 

실수 이후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겉과 속을 같게 하기보다 어우러지게 하라. 
: 다른 페이지에 나온 이야기지만 같이 다루어도 무방할 듯하다. 실수. 누구나 하지만 그 이후. 실수의 이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을 실수보단 실패로 단정 지었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다시 시도했다. 그렇기에 실수를 내 삶 속에서 만날 빈도가 적었고 실수에 관한 생각이 열리기 시작한 지점부터 끝맺음까지 <<심경>>이 이루어준 듯했다. 공자가 평가한 안회는 좋지 못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 적이 없고 알게 되면 그것을 다시 행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 실수, 좋지 못한 점을 알고 이를 고친다. 안회의 성품이 대단한 것도 있지만 약간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말과 함께 겉과 속을 좋은 쪽으로 같게 하기보단 나쁜 것도 잘 어우러지게 하여 한 발짝 물러서서 나쁜 점은 누르라고 해주고 싶다. 
자존심이란 타인이 나를 무시했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감정이다. 


감성이란 축적된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마치 자신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쌓여 몸에 새겨져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공부하며 축적해갔던 사유의 시간만큼은 머리가 아닌 몸에 새겨진다. <<인생의 밀도>> 중에서.

나를 지킨다는 것은 외부의 모든 자극을 막고자 스스로를 비우는 고립이 아니다. 내부를 좋은 것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욕망과 타협을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오래 되면 천성이 된다. 따라서 스스로 변화를 원한다면 어제까지의 습관을 오늘부터 단절해야 한다. 

진정한 어른이란 살아온 경험과 겪어온 세월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타인을 비춰 스스로의 부족함을 돌아보는 것은 어렵다. 타인의 부족함에 혹독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운 이야말로 부족한 사람이다. 

아흔이 되니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들의 입장이었을 때, 그들보다 더 선하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_ <<다 지나간다>> 중에서. 

'몸이 큰 것'은 바로 마음이다. 그리고 '몸의 작은 것'으로는 눈과 귀를 예"로 든다. 크고 작은 것으로 나뉘는 차이는 바로 생각하는 능력의 유무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른은 많이 아는 이가 아니다. 배운 것을 깊이 고민함으로써 작은 욕망과 세상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글의 깊은 뜻은 대개 글줄이 아니라 글줄과 글줄 사이, 행간에 있기 마련이다. 글줄이 전하는 정보에만 갇힌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헛똑똑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 옳지 않은 일을 먼저 생각해서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제공받아 마음 공부를 하고 작성한 gingerna의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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