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싸우듯이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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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쇼! 내가 아는 러시아어는 하라쇼가 전부다. 한국어로 좋다. good. 러시아에서 출장 왔던 엔지니어 코를로프가 내게 가르쳐준 표현이다. 코를로프는 나이 많은 엔지니어다. 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엔지니어라면 대부분 관리직으로 빠지거나, 흘러간 옛 기술에서 멈춰있다는 편견이 있다. 러시아의 나이 많은 엔지니어는, 적어도 코를로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직접 개발하고 테스트한다. 자부심을 가지고 주어진 일들을 해내고 만다. 하라쇼. 정말 하라쇼한 엔지니어다. 그에 비하자면 나는 나이도 많지 않지만, 여러모로 하라쇼한 엔지니어와는 거리가 멀다. 코를로프와의 대화는 주로 영어로 이루어졌다. 술자리가 아니고서는 그다지 많은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코를로프는 한국의 젊은 엔지니어에게 뭐라도 말해주고 싶어 했지만, 나는 러시아의 늙은 엔지니어와 세 마디 이상 이어나갈 수 있는 재주가 없었다.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입으로 나가면 토막 난 단어들이 되어 나갔다. 나의 영어는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서야 술술 나왔다. 등심을 구우면서 엠마뉘엘 카레르의 소설 『리모노프』를 아냐고 물어봤다. 소주를 들이켜며 에두아르드가 정말로 그런 미치광이인지 물어봤다.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로 출근길마다 보드카를 마시는지, 러시안룰렛을 직접 본 적이 있는지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도 했던 것 같다.(마지막 질문은 안 했을 수도 있다.) 코를로프의 모든 답변은 하라쇼로 시작했다. 진짜로 하라쇼라 하라쇼인지, 알았소라고 하라쇼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난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하루 종일 묻고 싶었던 말을 했을 뿐이고, 그 말을 코를로프에게 전달했다는 자체에 혼자 취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코를로프는 나를 디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디마는 드미트리를 줄여 부른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코를로프는 내 러시아 이름으로 디마가 제일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나의 답도 하라쇼. 술잔을 부딪히며 하라쇼였다. 스파시바는 아니었다. 아, 정정한다. 내가 아는 러시아어는 하라쇼와 스파시바, 이 두 표현이 전부다.

코를로프가 출장 왔던 그 시기에 『내가 싸우듯이』가 나왔었더라면, 그리고 내가 「창백한 말」을 읽었더라면 나는 코를로프에게 좀 더 그럴싸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었을까?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묻고, 사빈코프를 읽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을까? 모스크바 사람들은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다. 출근길 한 손엔 보드카, 다른 한 손엔 문고본이라면 정말로 멋진 광경이 아닌가? 마지막 러시안룰렛은 스킨헤드로 대체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런 질문은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코를로프의 답변들은 역시나 하라쇼로 시작됐을 테고, 그 뒤의 말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물론 알아듣든 그렇지 못하든 코를로프와 내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는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왔고, 나와 코를로프 둘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비대칭일 수 밖에 없다. 더 알고 싶은 한 쪽이 또 다른 한쪽에게 던져볼 수밖에 없었다. 코를로프라는 사람에게 내가 건넬 수 있는 교집합들. 그런 질문들을. 그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보통 그렇게 시작된다. 이는 정보의 비대칭이 점차 대칭에 가까워져가는 과정의 첫걸음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아니면 이 소설을 읽은 어떤 사람의 취향을 탐구하는 것이라거나. 내가 『내가 싸우듯이』를 읽게 된 것은 정지돈의 소설이 볼라뇨의 그것과 가장 닮아있었다고 말해준 한 지인 때문이었다. 확실히 장의 단편들은 그랬다. 『리모노프』가 섞여있는 볼라뇨 같았다. 무언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 소설집의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들의 단편들부터는 확실히 정지돈 같았다.(나는 정지돈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정지돈과 나의 교집합이 점점 작아져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모르는 영화와 작가, 이론, 체제들이 주구장창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보의 비대칭. 그제야 느꼈다. 하라쇼! 이 책은 하나의 거대한 리뷰로구나. 정지돈이 보고 읽은 모든 것들이 재구성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소설의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말들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당연하다. 리뷰란 그런 것이다. 리뷰를 작성한 사람과 같은 작품을 읽지 않고서는 리뷰를 이해할 수 없다. 100% 이해가 간다면 그건 리뷰가 아니라 프리뷰다. 좋은 리뷰는 읽은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요소들을 숨겨놓는다. 그리고 그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준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싸우듯이』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텍스트도 책의 끝부분에 수록된 「일기/기록/스크립트」 와 참고문헌, 찾아보기였다.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도록 만들 커리큘럼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번 생애에서 완전히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리뷰는 세상에 없던 소설이 되기도 한다. 내가 정지돈에게 스파시바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정지돈은 이런 소설도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만약 『내가 싸우듯이』가 러시아어로 번역되는 날이 온다면 코를로프에게도 꼭 한 권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코를로프가 다시 한국 출장을 오게 된다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러시아 사람들은 『내가 싸우듯이』를 어떤 소설로 읽고 있냐고? 작가 정지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고? 아마도 코를로프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하라쇼. 블라블라. 그리고 다시 하라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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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는 힘 - 처음 시작하는 관점 바꾸기 연습
이종인 지음 / 다산3.0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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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즈 입문서라기보다는 초등학생용 탐정소설에 가깝게 읽힌다. 주인공은 모든 문제를 트리즈로 풀어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쉽게 쓰는건 좋지만,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해버렸다. 남는 게 없다. 트리즈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보다는 다른 책을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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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 - 운명을 바꾸는 "한번 하기"의 힘
김민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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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아이디어는 머릿속을 맴돌다 얼마 못가 사라져 버릴게 분명하다. 반면 아주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만 있다면 인생은 달라지게 된다. 성공한 인생과 평범한 인생의 차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발생한다. 성공이라는 획을 그은 사람들은 실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각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그냥 한번 움직여본다. 그 움직임에 뚜렷한 목표가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위즈덤하우스)는 김민태 EBS PD가 쓴 자기계발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작은 실천'이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 강조한다. 그 역시도 2014년 SNS에 올린 세 줄짜리 포스팅을 실천에 옮기면서부터 변화를 맞이했다고 한다.

 

2014년 1월 2일. 첫 실천.

한 정거장 일찍 내리기.

뇌가 뛰고 위장의 역동이 느껴진다. - 4 page

 

출퇴근 걷기를 습관화하면서 건강이 나아졌고, 독서량이 늘게 됐으며, 사람과의 만남이 즐거워졌고, 결과적으로 정서적 측면의 '비교적 맑음'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고, 여기서 얻은 에너지가 업무 전반으로 이어져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게 되었으며, 덤으로 '한번 하기'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어 이렇게 책까지 냈다고 한다. (숨이 차다.) 그러니 적어도 저자의 이야기에 한 번쯤은 귀 기울여 볼 만 하지 않은가?

 

간혹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17대 대선 후보였던 허경영의 노래 <Call Me>를 떠올릴 수도 있다. 책이나 노래나 오십보백보 아니냐면서. 노래 가사가 대략 이렇다.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 ...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확실히 저자의 주장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허경영은 끝내 대망을 이루지 못했지만, '허경영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이름을 각인시켰으니 이는 또 다른 의미의 성공이 아닌가! 시작은 고작 '내 눈을 바라봐' 그 한마디였을 뿐인데 말이다.

 

무엇이 되었든 '고작 한번'이라도 해본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일단 점부터 하나 찍자는 것이다. 계속해서 점의 개수를 늘려간다면, 언젠가는 그 점들 중 하나를 지나는 획을 만날 확률도 높아진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비롯하여 피카소, 미야자키 하야오, 래리 킹, 오프라 윈프리, 정유정 등 각 분야 유명인사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를 보충 설명한다. (물론 허경영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자칫 식상해지기 쉬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책의 흡입력이 의외로 대단하다. 저자의 명료한 문장과 탁월한 구성이 돋보인다. 그가 지니고 있던 '다큐멘터리 PD'라는 직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한편, 책의 중반부에서는 SNS를 활용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평소 효율적 SNS 활용에 목말라하던 독자라면 유용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나는 이 책을 '고작 한번' 읽어봤을 뿐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효과가 느껴진다. 의욕이 마구 샘솟는다. 올해 초에 세워놓고 지키지 못한 계획들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다. 미래를 위해 작은 점부터 찍어보자. 그 작은 점 하나가 인생을 뒤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구은재를 민소희로 바꾼 것도 바로 그 '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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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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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좋아한다. 20대를 그들의 앨범과 함께 보냈다. 무심한 듯 흘러가는 기타 리프, 많은 음절을 내뱉지 않아도 여운을 남기는 노랫말들, 어딘지 나사 하나 풀린듯한 보컬의 목소리. 나는 그런 것들이 참 좋다. 특히 2008년 8월에 발매한 5집은 내 인생의 명반으로 꼽는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 톤이라 따라 부를 수는 없지만, 가끔 샤워를 할 때면 잘 하지도 못하면서 5집의 트랙들을 허밍 하기도 한다. 아마 욕실 밖에서 듣는다면 어느 시골 노인의 곡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음음음으~ 음으음음~ 아, 이건 4집 타이틀곡이다.

음악과 별개로? 아니 음악 때문에 나는 작가 이석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글쓰는 시간들 때문에 새 앨범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쓰는 이석원은 행복해 보였다. 첫 책 『보통의 존재』는 에세이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색깔만 바꿔 재발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날개돋친 듯 책이 팔려나가고 있다. 아무튼 그랬다. 『실내 인간』이 주춤해서 금방 밴드로 돌아오려나 했었는데, 그것은 내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이기적이지만, 그리고 실제로 이석원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겠지만, 그의 신보를 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이런 기분이 바로 애증이겠지. 나는 모범적인 팬이 되지는 못할 듯싶다. 인간 이석원의 팬이 아니라, 그저 뮤지션 이석원의 팬일 뿐인가 보다. 음악 감상에도 영향을 미칠까 싶어 그의 책은 계속 미뤄두기로 했다.

그래서 이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이렇게 빨리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올해 신보가 나오기 전까지는 남겨두기로 한 이석원의 책이었는데... 이게 다 회사의 독서 통신 때문이었다. 우리 회사에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받아 읽고 시험을 치르면 교육점수가 올라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책은 공짜다. 하지만 매번 재미없는 자기 계발서나 한물간 경영 서적들로 도배가 되어있어 나는 잘 참여하지 않았었다. 그곳에 올라온 책들 말고도 내게는 읽고 싶은, 또는 읽어야 하는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월은 조금 달랐다. 대상 도서 리스트에 이석원의 신간이 올라온 것이다. 순간 아주 잠깐 고민했다. "이걸 신청해야 해... 말아야 해...", 그러다가 이석원의 글을 좋아하는 회사 동기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동기는 깜짝 놀라면서 이건 완전히 대박이라고 했다. 빵 터졌다. 이 책을 이미 읽었던 친구였기에 나는 그런 반응에 솔깃했다. 그 친구는 도대체 이 책에서 무슨 문제를 뽑아낼 수 있겠냐고 했다. 소개팅, 포르쉐, 김정희라는 키워드를 들먹이며 예상 문제를 뽑아보더니 자기는 바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줏대가 없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럼 나도..." 하면서 신청해버렸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책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나서는 내심 양장본으로 도착하길 기대하게 되었다. 입으로는 작년 말에 나온 언니네 이발관의 싱글 첫 트랙을 허밍하고 있었다. 옆자리 후배가 흘끔 쳐다본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아니면 소음 탓인가? 이제 와 생각해보니 조금 민망해진다.

일주일 후, 회사로 책이 도착했다. 잽싸게 1층에 내려가 택배 박스를 가져왔다. 한 권인데도 묵직한 걸 보니 양장본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자리에 올라가 난폭한 커터 칼질로 박스를 개봉했다. 표지의 초승달도 좋았고 판형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웬걸... 마치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을 연상케 하는 이물질이 책 상단에 덕지 덕지 붙어있었다. 처음 보는 기괴한 모양이었다. 양장본 작업을 하다가 마감 처리를 깔끔하게 못한 채로 책을 넣어버린 것 같았다. 이물질의 크기가 생각보다 꽤 컸다. 아니 도대체 출판사는 어떻게 확인을 하길래 이런 책을 보내는지, 또 서점은 포장할 때 책 상태라는 걸 확인조차 않는 건지. 분이 치밀어 올랐다. 웬만큼 부당한 일에도 그냥 허허 웃으며 넘어가는 성격이라 자부했는데, 잠깐 욱함이 올라왔다. 이걸 출판사에 따져야 하나, 서점 측에 따져야 하나 고민하다가, 교환 절차를 거치려면 배송기간 동안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라앉히기로 했다. 아까는 난폭하게 휘둘렀던 커터 칼을 다시 쥐고 이번에는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섬세하게 이물질을 제거해 나갔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까지 손질이 끝났다. 회사 책상 위에 꽂아두고 바라보니 뿌듯해졌다. 피규어가 부럽지 않았다. 3월 초였다.


30일이 됐다. 봄바람 몇 번 불더니 거짓말처럼 3월 한 달이 다 지나가 버렸다. 독서통신의 시험은 매달 말일이 기한이다. 만약 그 안에 시험을 치르지 못하거나 혹은 과락 점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에는 페널티가 있다. 책값을 고스란히, 아니 책값 + a 만큼의 금액을 월급에서 떼어가는 것이다. 동기가 내게 시험은 잘 봤냐고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답했다. 이상하게 동기에게 죄책감도 조금 느껴졌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나는 딱 '금치산자'까지 읽었다고 답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책상 위의 좋은 장식품이었다. 표지에 초승달이 떠있는 책은 볼라뇨의 것이 아니고서야 미친 듯 읽어본 기억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꽂아둔 이후로 빼들지를 않았다. 3월 한 달 동안 6권의 책을 읽었는데, 정작 이 책은 왜 읽지 않았던 것일까? 뮤지션의 팬이라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그나마 괜찮다고 여겨졌다. 명분이라 쓰고 핑계라고 읽으면 될 것 같다.

학창시절 나는 벼락치기에 강한 스타일이었다. 적어도 고등학교 내신까지는 그렇게 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문제집보다 다른 책들을 많이 읽었었다. 언어영역 문제집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책을 성실히 읽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던 감독 선생님들도 꽤 있었다. 아무튼 내게는 하루만 읽으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3월의 마지막 날이 다 되어서 이석원의 책을 잡고 있자니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교복이 그리웠다. 돌아가고 싶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도 출근길 2호선이었다. 다행히도 작가 이석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글솜씨가 좋았다. 괜히 작가가 아니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순식간에 절반정도의 분량을 읽어 버렸다. 교과서와 달리 예상 문제를 점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밑줄을 칠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책은 '이야기 산문집'이라는 해괴한 장르를 내세우고 있었는데, 내가 볼땐 이 책은 그냥 소설이다. 아무래도 '『실내 인간』에 이은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보다는 '『보통의 존재』에 이은 두 번째 산문집'쪽이 더 잘 팔릴 것 같았나 보다. 동기가 말했던 것처럼 소개팅이 나왔고, 포르쉐가 나왔으며 김정희가 등장했다. 어떻게 읽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굉장히 솔직했다. 상대방(김정희)에게는 왠지 좀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라면 과연 이렇게까지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글이 내 사람들에게 상처로 다가가지 않을까? 주간지 기자를 하고 있는 친구가 떠올랐다. 지난주에 둘이서 청계천을 걷던 중 녀석이 내게 말했었다. "이런 고민은 진짜 처음인데, 내가 쓰려는 기사 때문에 피해자가 고통받게 된다면, 이 기사를 진짜로 써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그걸 잘 모르겠어. 너라면 어떻게 할래?" 그 친구는 지금 그 기사를 쓰고 있으려나? 아니면 꼭 써내야만 했을까?

업무시간 내내 책을 언제 다 읽지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결국 동기가 먼저 시험을 봤다. 책을 읽은 지 좀 오래돼서 가물가물하다던 내 동기는 80점을 맞았다고 했다. 결과 보고 후 시험 힌트를 전달해준 동기는 회식 자리로 유유히 떠나갔다. 퇴근길에 힌트를 챙기기는 했지만, 들춰보지는 않았다. 스포일러가 있을까봐. 저녁 7시였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의 속도로 봤을때 퇴근길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지하철에서 다시 한 번 집중해서 읽었다. 포르쉐는 아반떼가 될뻔했다가 미니쿠퍼가 되었다. 책 읽는 지하철의 BGM은 언니네 이발관의 3집이었다. 이번에는 허밍으로 따라 부르지 않았다. 허밍 하는 시간마저 아꼈다. 결국 마지막 단대오거리역에 도착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데 성공했다. 책은 재미있었다. 다만 부작용이었을까? 언니네 이발관의 다른 곡들이 더 간절하게 듣고 싶어졌다. 12시까지는 아직도 3시간 넘게 남아있었다. 드라마틱한 결말을 좋아하기에, 시험은 11시에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컴퓨터가 있는 집 대신 출장으로 며칠간 가지 못한 헬스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트레이너가 오랜만이라며 방긋 웃어 주었다. 이런 헤픈 남자 같으니라고... 그의 잘빠진 근육질 몸매가 부러워 괜스레 심통이 났다.

꾸역꾸역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시험을 보기 위해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 접속하려 했는데, ID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하필이면 아이디가 회사 메일 계정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바람에 비밀번호 찾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회사 계정으로 새 비밀번호를 날리는 순간, 내 돈 2만 얼마도 같이 날아가 버릴 판이었다. 이런 변수를 예상 못 했던 건 아닌데, 인생은 금물인데, 나는 늘 이렇게 일을 처리한다. 천성이 글렀다. 30여 번의 로그인 시도 끝에 겨우 접속에 성공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다양한 ID, 비밀번호 조합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처음 알았다. 숫자 + 영어 + 특수문자 의 조합은 정말 강력했다.

드디어 시험을 쳤다. 75점. 동기보다 5점 낮은 점수였다. 과락이 70점이었으니 일단은 만족이었다. 예상대로 문제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어떤 행동을 취했나? 하는 식의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이석원을 앉혀놓고 이 문제를 풀게 한다면, 아마 그도 혀를 내두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책이 이렇게 소비되고 있다는 그 자체를 싫어할 것 같다. 출제자가 김정희라 하더라도 말이다.


"뭐해요?" - 176p, 213p, 230p, 348p

그러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일기를 일기장에 안 쓰고 블로그 감상란에 적고 있는 건가? 시간은 새벽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이렇게 글을 써도 댓글도 달고 공감도 눌러줄 사람들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 글의 정체도 그냥 '이야기 감상문'이라고 해두자. '이야기 산문집'을 읽고 쓴 '이야기 감상문'말이다. 얼른 언니네 이발관 6집이나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면 다음 달 독서 통신으로 『보통의 존재』나 『익숙한 새벽 세시』가 올라오던가. 새벽 두시, 이 시간이면 오지은의 노래가 당겨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과연 여자 보컬 허밍도 소화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문제의 답은 'O',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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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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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오랜만이었다. 지난 주말 전북대 캠퍼스 앞에서 대학 동기 H를 만났다. 홍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시끄러운 거리였다. H는 어깨가 살짝 남는 진회색 코트에 카키색 면바지를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택이 번쩍이는 뾰족한 구두 앞코부터 눈에 들어왔다누가 봐도 대학생은 아니었다. 회사원이었다나는 주말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H에게 물었고, 아니나 다를까 H는 오늘도 출근이었다고 말했다. 제조업은 쉬는 날이 마땅치 않다고 너스레를 떨며한 손으로는 차 키를 흔들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동그라미 네 개가 보였다. 아우디였다. 지난달에 뽑은 모양이다. 구두에 깔창을 집어넣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도 H의 키가 5cm는 자란 듯 보였다. 그래 봤자 170이 될까 말까지만... 아무튼 그랬다. 나는 H에게 맞서 차 키 대신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갤럭시 노트5! 빠밤! 할부가 아직 21개월 남았다는 것만 빼면 완벽한 핸드폰거기에는 12월 교통카드 값으로 48,500 원을 빼가겠다는 카드사의 문자가 들어 있었다.

 

H는 늘 나보다 한 발씩 앞서갔다대학 동기지만 인생으로 따지면 선배였다. 입대는 1년이 빨랐고연애는 3년이 더 빨랐다. 분명히 술은 똑같이 마신 것 같았는데 졸업도, 취업도 빨랐다심지어는 결혼까지도. H는 입사 1년 만에 같은 회사 경리 아가씨와 결혼에 성공했다나는 그 결혼식의 사회를 맡았다. 신부의 나이는 21살이었고하객 사진 촬영에서 나는 여고 졸업 사진 이상의 그 무언가를 경험했다그날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H 부부에게서 딸이 태어났다. 정말이지 H는 속도마저 빨랐다현재 H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에는 두 명의 H 있다. 아빠 H H 어르고 있는 아기 h. 나는 그 사진을 통해 첫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손톱만 한 네모칸 안에서 H, H 집은 언제까지고 행복해 보였다.

 

리는 대학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날 밤도 시끌벅적한 호프집을 찾았다. 살짝 어두운 조명과 쿵쿵거리는 음악들, 스크린에 재생되는 EPL 경기. 맨유 또는 뉴캐슬. 그런 공간에서는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한들 엿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H는 그런 공간을 좋아했다. 안주는 모둠으로 나오는 것 아무거나. 뭘 시켜도 어차피 기본 안주 마카로니보다는 못할 테니까. H가 본론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은 마카로니 접시를 다섯 번 정도 리필했을 즈음이었다. 놀랍게도 H는 많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안정된 직장단란한 가정, 그리고 한적한 지방에서의 생활. H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부러워 보이는 그 삶 속에서 H는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H는 너무 이른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어린 아내와 h를 보면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서로에게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고 했다나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다가, 그래도 네가 더 잘하라는 말 밖에는... 내가 모르는 많은 일들이 H네 집에 있었을 것이다그것들을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내가 언젠가는 H의 뒤를 밟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버스 편으로 나는 성남에 돌아왔다. 익숙한 지역,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조금씩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여느 때처럼 몇 권의 책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널브러진 책들을 책꽂이에 하나씩 꽂아 넣다가 다시금 『축복받은 집』과 마주하게 되었다. 아뿔싸! 그제야 줌파 라히리의 단편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게 읽어버려서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이야기들이, 나와 H, 그리고 H의 아내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축복받은 집』은 예방접종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집이었다바늘이 살갗을 뚫고 들어올 때의 따끔함,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체내에 퍼져가는 적당량의 항원들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더 많은 항체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들작가는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그 찰나의 아픔들에 집중했다.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축복받은 집』이라는 제목이 영 와 닿지 않았다주인공 부부는 서로의 아픔을 들춰내기 바빴고(「일시적인 문제」), 자식들 중 한 명은 알고 보니 혼외 자식이었으며(「질병 통역사」), 불륜을 일삼거나(「섹시」), 사회 부적응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센 아주머니의 집」, 「진짜 경비원」) 단편들이었기에 망정이지, 이 이야기들이 한 곳에 모여 장편이 되었다면 한국식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이른바 '이놈의 집구석'이 등장할 판이었다. 나는 "축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겁니까?" 하고 출판사에게 묻고 싶었다차라리 해외판처럼 소통의 부재를 전면에 다뤘던 「질병 통역사」를 표제작으로 하는 게 맞았던 건 아니었냐며 말이다.

 

생각이 달라진 건 『축복받은 집』을 완전히 덮고 난 이후부터였다. 우리 인생이 늘 그렇듯 이야기는 언제나 흘러간다. 『축복받은 집』의 단편들은 대게 따끔함이 극에 달한 순간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편 속 인물들의 삶도 같이 마침표 찍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인물들의 마침표 이후를 떠올리게 되었다축복받은 집을 나선 그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한층 더 자연스럽고 단단해 보였다줌파 라히리는 자신의 소설이 '이민자 소설'이라 불리는 것이 타당치 않다고 했다 또한 여기에 동의한다그녀의 소설은 오히려 더 큰 범주인 '성장 소설'쪽에 가깝다조금 더 정확히는 성장 이후를 독자의 몫으로 남긴 '성장 소설'이다마침표 이후 인물들이 성장했을 것이라는 확신은 독자들의 경험에서 기인한다줌파 라히리의 이야기는 나도 그랬었고,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하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작은 일상이 때로는 국경과 인종도 초월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축복받은 집』에서 말하는 '축복'이란 인물들이 겪은 따끔함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인물들은 더 큰 고난과 마주하기 전에 항체를 만들 기회를 얻었다독자인 나는 이야기를 통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다제때 맞은 예방접종이었다알코올 솜만 문지르고 나면 약간의 따끔함 정도는  사그라들 것이다이제 다음은 H의 차례다. 아직 늦지 않았다녀석에게도 꼭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니 오늘 밤엔 H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드디어 너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생겼다고, 일시적인 문제들을 돌아보게 할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에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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