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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몇 년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을 어투랑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여기에 다시 올린다.
이 천편일률적인 호평일색에 조금이라도 역행하는 근거가 되고자....
왜냐하면, 나로서는 이 책은 이만큼의 호평을 받을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내용을 안다고 가정하고 감상만 쓴다.
개인적으로 친구에게 추천아닌 추천을 받고 나서도
거의 2년간 은근히 마음에 부채감처럼 한구석에 놓여있던 작품이라서
꽤나 기대했었음. 그런데....!
주인공 은서가 너무 짜증났다.
그 밑도끝도없는 이기심에 신경질이 나고 동시에
그것을 자꾸 정당화하려고 하는 내면 서술이 한심하고 어이없었다.
예를 들어서 '그래 나는 세에게 내 상처를 고스란히 옮겨주는 것인지도 몰라'
따위의 독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자기 객관화를 하면 뭐 하는가?
행동이 하나 바뀌질 않고 그대론데.
그러면 이 무책임하신 은서 여사의 주위 사람들을 대충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작중에 보면 은서가 어릴 적 집을 나갔었다.
그게 은서한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걸 어머니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서
후반부에 그걸 풀어주고 싶었다는 듯한 서술도 계속 보인다.
남동생은 어떤가. 애인사이로 착각당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이고
두 장이나 할애해서 둘의 깊은 사이를 보여주고 있을 정도이다.
남편인 세는, 후반부에 이 인물이 폭력적으로 변한 것도 결국에는 어찌 보면
자기 때문이지 않은가? 어떻게든 견디고 이를 악물어 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는 자기 때문에 몇년을 그렇게 가슴아팠는데 그걸 이해하는 '척'은 다 하더니,
뭣보다 한심한 것이 결국 이 여자가 죽는다는 것이다.
자기 어머니, 남동생 이수, 남편 세 모두 뒤로 하고 그냥
자기 마음 불편한 것 좀 못참겠다는 이유로 자살을 해버린다 이 말이다.
그따위 무책임이 세상에 어디에 다 있는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그따위 짓거리를 '슬픔'이라고 포장해주면 안 되는 거다.
차라리 [깊은 무책임]이라고 해야지. [깊은 이기심]이나.
완은 그냥 한마디로 개새끼다, 그저 욕구에만 충실한.
세는 바보일 뿐, 하는 짓 보면.
개인적으로는 이 말도 안되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이 납득이 잘 안됐다.
그러니까 그런 작품들이 있다. 감정적인 사디즘을 부리는 작품들이 살다보면 있기 마련.
예를 들어서 영화 <추적자>를 그쪽 부류의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든 관객을 찜찜하게 하려고 갖은 수작을 부린다.
작중 내내 무능력하던 경찰이 하필 하정우를 죽이기 전에만 신통방통하게 김윤식을 말린다던가.
이 소설도 내가보기엔 그렇다. 그런 '우울감'을 독자에게 불어넣고 싶어서 안달이 나 보인다.
마치 퍼즐을 짜맞추듯이
완은 그래서 개새끼여야 하는 거고
세는 그래서 그렇게 바보처럼 굴다가 후반부에는 '갑자기' 폭력적인 인물로 화하는 것이며
은서는 그래서 그렇게 이기적인 주제에 혼자서 고통스러운 척은 다 하는 것이다.
결국 은서는 그 비애감(?!)을 못다 견뎌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투신'해야 하니까'.
나름의 논리는 서 있는 것 같다. 은서는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상실감을 좇게 되어버렸다.
완은 어릴 적 사건으로 고향을 등지게 되었고, 그래서 은서를 기차 안에 남겨두게 되었다.
완을 '상실했다는' 마음 때문에 은서는 그때부터 완을 좇기 시작하는 거고.
세는, 물론, 몇년을 그렇게 마음을 기울였는데도 여자가 그렇게 굴면 분노할 만 할 터이다.
말했듯 나름의 논리들은 다 서 있다. 그런데 위에서 내가 퍼즐이라고 썼지 않은가?
작가가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하려면 이런 전제가 있어야 하겠다'라는 계산 아래에
인물의 성격과 핑곗거리를 다 준비한 후에 그걸 요리조리 짜맞추어 놓은 것 같은, 그런 위화감.
결론적으로는 은서라는 인물이 참 공감 안가는 인물이더라 이거다.
그런걸 슬픔이라고 포장하는 후안무치함에 이르러서는 사실 몸서리가 다 쳐졌다.
굳이 이 소설에서 좋았던 점을 말해보자면
주요인물 3명의 고향인 이슬어지나 은서가 지은 자작 소설에 나오는 농촌 묘사는 좀 괜찮았던 듯.
솔직히 조금은 불가해하다. 신경숙이 등단한 지 20년은 넘었는데
아직도 이름이 기억되고, 작품활동을 한다면 그게 요행일 수만은 없을텐데.
이렇게 사람 불쾌하게 하는, 저열한, 감정장난 치려고 하는 작품이나 써냈더라니.
개인적으로는 많이 실망.
흥미로웠던 점. 이 소설의 촐판년도가 94년이다.
그 시대에 지배적인 정신 상태라고나 할까,
이렇게 가벼운 작품이 인기를 끌 만큼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향유하려는 자세가, 음, 살기 꽤 좋았구나. 싶었다.
요컨대 IMF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때이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