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페미니즘이 대한 글들이 많이
보여 여성이지만 '그런가부다..'라며 치부했던 일들에 대해, 기분 나빴지만 더이상 항변할 수 없었던 사회에 대해, 나 또한 남성의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었다. 그리고 요즘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미투
운동'으로 대한민국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숨죽이며 아파했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자신이 그동안 이뤄놓았던 모든 것의 잣대가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가슴속에 묻어놓았던 이야기를 하나 둘 꺼냈을 때 얼마나
힘겨웠을까.
매체를 보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지난날의 이야기를
꺼내는 여성들을 보면서 나 또한 숨죽이며 분노하게 되었었다. 당연한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성들의 뻔뻔함 뒤에는
그동안 높은 벽을 쳐왔던 대한민국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몫 했다는 것에 개탄하며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의 앞날이 불안하게만
다가왔었다.
각 분야에서 그동안 숨죽였던 목소리가 하나 둘
터져나올 때마다 그녀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며 이것이 잠깐 이슈회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고 피해자들의 반성과 당연하듯이
여겨졌던 관행이라는 남성들만의 우월감에서 벗어나 같은 인간으로서 상처받고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시기와 맞물려 <굿바이, 세븐틴>은
대한민국에서 겪는 여성들의 성폭력이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소설이다. 겉으로 표현되지 않지만 자기 파괴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인 남성들의 그릇된 인식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강남 한복판에 차려진 여성
전문병원 '올리메이드', 그 곳에서 윤영은 여성의 음부 성형을 해주는 의사로 날마다 밀려드는 환자로부터 숨쉴 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기계적인 웃음과 의사로서 해야할 말들만 내뱉으며 위태로운 생활을 해가는 윤영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놈들을 찾아 밤거리를 배회한다. 어떤
날은 클럽에서 만난 사람과 잠깐의 사랑을 맛보기도 하면서 자기 파괴적인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영을 찾아온 심희진이란 여자를 만나게
되고 집착할만큼 윤영에게 사소한 일까지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싶어하는 그녀의 태도에 윤영은 그녀를 피하게 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여겨질만큼 이상한 여자 심희진이 내뱉은 한마디 때문에 윤영은 그 옛날 자신이 피해갈 수 없었던 불행한 기억과 연결되고 그 기억으로 인해 밤마다
남자들을 쫓는 자기 파괴적인 모습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데... 더욱이 자신에게 털어놓았던 남편의 이야기와 그녀가 죽은 후 찾아온 남편의 이야기는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여서 윤영은 잠깐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그것과 닮아 있는 심희진의 피폐함에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을 정도로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모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비가 오는 날 자신에게 우산을 씌어준 남학생들, 그들의 호의 속에 우산속으로 들어갔던 윤영, 아무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옷이
벗겨지고 사지가 붙들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수히 쏟아지던 빗방울...
윤영의 이해할 수 없는 자기파괴적인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고 공감하는 일조차 버거울 수 있다. 그런 무거움 때문에 소설을 읽는것
자체가 힘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성폭행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그보다 더한 자기학대와 자기 파괴를 일삼으며 매 시간을 그렇게
자기를 죽이는 일에 소모하고 있다. 두렵고 무섭고 어두운 이야기지만 당사자들이 피할 수 없었음에 스스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지며 몇년이 흘러도
다 씻을 수 없는 기억속에 갇혀 살아가는 것을 깊이 공감한다면 자신의 성욕을 충족하기 위해 힘없는 여성을 유린해야겠다는 찰나의 생각이 얼마나
엄청난 짓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가는
대한민국의 또다른 윤영과 심희진의 모습에서 남성들이 심각성을 깨닫길 바라며 그래서 남성들이 많이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