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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머리카락 하나와 연결되어 있는 세 명의 여자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야기 <세 갈래 길>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바들라푸르에 살고 있는 스미타는 불가촉천민으로서 카스트계급의
최하위 계층이다.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 불리우며 달리트들과 함께하는 것은 재앙과도 같은 일이라 여겨져 달리트들은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마주쳐서
안되고 숨소리조차 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다. 스미타는 신식 화장실이 없는 마을에 사람들이 싸질러놓은 오물을 처리해야하며 그들이 간혹 던져주는
쌀이나 옷감으로 생계를 연명해야하며 그것도 없을 때는 남편이 매일 자트의 밭에서 잡아온 쥐를 주식으로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런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스미타는 딸 아이 랄리타만은 자기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서는 안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보내고 말리라는 다짐을
한다. 어렵게 모으고 모은 돈을 바리만을 찾아가 상납한 댓가로 겨우 랄리타를 학교에 보내던 첫 날 몇날 며칠을 바느질을 해서 만든 옷을
랄리타에게 입히고 두려움으로 가득찬 랄리타를 학교에 보낸 스미타는 불안한 마음 속으로 새롭게 싹튼 희망을 맛보며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스미타는 방구석에 엎드린 랄리타를 보게 되고 회초리를 맞아 옷은 찢어지고 상처투성이 등을 발견하여
자초지종을 묻게 되면서 랄리타에게 수업 시간에 빗자루질을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싫다고 대답했다는 댓가로 혹독한 매질을 당한 것을 알고 분노를
느낀다. 바리만에게 상납한 돈을 훔친 뒤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 스미타는 이미 탈출을 반대한 남편을 두고 딸과 함께 마을을 탈출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비슈누 신에게 성스러운 재물을 바치기에 이른다.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사는 줄리아는 아버지를 도와 공방을 도와주고
있다. 결혼한 큰 언니와 학교에 다니는 동생과 달리 아버지의 공방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줄리아, 어느 날 머리카락을 모으러 나섰던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게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가족 중에 아버지를 도왔던 줄리아가 공방을 꾸려가기 시작한다. 병원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어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어머니가 필요하다던 서류를 아버지 사무실에서 찾던 중 줄리아는 공방이 재정에 허덕임을 알게 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폐업을 해야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즈음 줄리아에게는 인도에서 온 이방인인 카말과의 사랑이 시작되지만 공방의 폐업이 눈앞에 닥친 이상 자신을
좋아하는 부자인 지노와 결혼을 해 집의 빚을 갚아줄 것을 어머니와 큰언니에게 제안받고 고민하기에 이르지만 카말은 그런 줄리아에게 인도에서
머리카락을 수출해 공방을 유지해나가면 된다고 제안한다. 할아버지대부터 이탈리아인의 모발로만 수작업으로 가발을 만들어나가던 공방이었기에 엄마와
큰언니의 반대에 부딪치지만 줄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로 결심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사는 사라는
잘나가는 변호사이다. 존슨&록우드 로펌에서 여자로서 제일 빨리 진급했고 여자임에도 오랫동안 남아 여자라는 핸드캡을 깔아뭉개며 남자들보다
더 높은 실적을 거둬들이고 있다. 그녀의 눈부신 회사 업적에 매니징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모든 것은 그녀가 계획했던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두 번의 이혼과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성공이라는 커다란 마약에 도취되어 아이들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버리며 살아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쓰러지게 되고 이 후 병원에서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쉬어야한다는 담당의사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사라는 일도, 암도 모두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적어도 병원에서 자신 밑에 있던 변호사를
만나기 전까지.... 성공의 가도를 위해 달려왔고 가족을 포기해왔고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며 오로지 일에만 매달렸지만 막바지에 다다라서 그녀는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정상 자리에서 밀려났고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하며 머리카락은 수시로 빠졌고 몸도 홀쭉하게
야위어갔다. 이제 사라는 알게 된다.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것은 가족과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머리카락과 하나로 이어져
있는 세 여자의 이야기에 인도의 불가촉천민인 스미타와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공방을 이끌어나가야 할 줄리아, 싱글맘에 아이 셋을 키우지만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인 사라와 연결되어 있다.
세 여자 모두의 삶은 각각의 상황들은 달라도 여자로 태어나 평생을 살며 끊임없이 받는
불공평함과 부조리함이 녹아 있어 여성의 독자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사실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큰 오만일 수도 있겠다.
나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지 않아 단지 달리트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야하는 각종 부조리함을 겪어보지 않았고 줄리아처럼 가업을 이어받아야한다는
부담감도 느낀적이 없다. 그리고 사라의 경우처럼 암에 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자로서 받아야했던 온갖 고충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인도 사회의 카스트제도의 비인간성과 취약한 여성들의 짓밟힌 인권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데
단지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부라는 이유로,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받아야하는 멸시와 사람들의 냉대, 손가락질,
짐승만도 못한 사건과 죽임에 대해 경악과 분노를 감출 수 없는데 아무리 천년을 이어온 그들의 문화라고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내던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옹호해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믿고 따르는 신들조차 그런 모습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여자들에 대한 인식을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녀들이 결정한 용기와 어디선가 그녀들과 닮은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릴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