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역
양영제 지음 / 바른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시키야, 쌀 한톨이 농부들 피 한 방울이고
한 되빡이 사람 목숨 하나여."


어릴 적 과수원을 하던 아버지는 그릇 언저리에 쌀 한톨이라도
남아있을라치면 늘 싹싹 긁어먹으라고 하셨었다.
고된 농사일이 무엇인지 알기에 쌀의 소중함이 저절로
몸에 배었거니와 한국전쟁 때 신천 대학살을 피하며 온갖 고생을
해왔던 삶을 살았던 아버지이기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쌀 한톨의 소중함보다는
친구가 맛있게 먹는 과자 한개를 더 열망했었기에
그마저도 귀에 오롯이 박혔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쌀 한톨에 서려있는 농민들의 피맺힘을
알게 되었던 것은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였다.
그 전까지 자세히 알지 못했던 여순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들이 뱉어내는 억척스럽고 의심서린 눈빛이
어떻게 뼛속까지 박히게 됐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번영상회를 하면서 연탄과 쌀, 석유를 파는 윤호관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 훈주에게 저같은 말을 했을 때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여수역>은 일본인들과 지주들에게 유린당하고
여순 참변에 무참하게 희생된 농민들의 이야기를
윤호관과 아들 훈주의 눈에서 풀어가고 있다.

일본이 항복하고 반민족행위자를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채
미군정이 들어섰고 정치적 틀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모두 빨갱이로 몰아세워 몰살하는
과정에서 제주도 출동을 거부한 14연대로 촉발된 여순사건은
엄청난 참변을 가져왔다.
그로 인해 반민족행위자들을 제때 처단하지 못하였고
이승만은 장기독재집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진자들과 더 가지기 위해 양심까지 집어던진 자들이
권력과 만났을 때 우리는 엄청난 비극을 겪어왔다.
최근 언론과 정부로부터 왜곡되고 가리워졌었던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 <택시운전사>란 영화가
흥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근대사에 관심이 없거나 부모님 세대가 말하는 '빨갱이'란
이름으로 가리워진 그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자랐다면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이야기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순사건도 가려진 진실이 많아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간 이들은
오랜세월 연좌제에 걸려 이루고 싶은 꿈에 가까이 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지속되는 감시 속에서 평생을 쥐죽은 듯이 살아가야했다.
이미 전 대통령이 국가가 잘못한 일이라며 사과를 했지만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만들어 낸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빨갱이'라고 치부해 마녀사냥하듯 사냥당했던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여수역>이란 소설로 탄생했고
진실을 알아가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세대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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