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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그린 그림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0814/pimg_7355521371717169.jpg)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
너무도 오랜만에 가슴 절절하며 순애보 사랑을 그린 소설을 만났다. 이런 순애보 사랑을 그린 소설을 고 3 무렵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후로 한참동안 도통 만나볼 수 없었던 이야기라 쉽게 놓질 못했다. 변해가는 세상만큼 사람도 변해가는 것인지 너무도 빠르고 둔탁해져가는 듯한 세상과 사람들의 모습이 회의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고 어느 순간 사랑 또한 스피드하고 쿨하게 잊어가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보여지는 세상에서 <바람으로 그린 그림> 의 모니카와 리노의 운명적인 사랑은 신파적이거나 시대에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런 점이 나에게는 이 책을 덮을 수 없도록 만드는 강력함으로 다가왔는데 요즘 세상에 찾아볼 수 없는 화석과도 같은 사랑이야기처럼 다가오기에 더욱 아련함을 느끼게 됐던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본디 내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둠 속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서 그녀는 내 손을 힘주어 잡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죄를 고백하듯 덜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시집가게 됐단다." p.13
유치원 시절 리노의 세 식구는 베드로 신부에게 영세와 함께 세례명을 받았다. 신부님은 두 번째 교황이 리노였기에 세례명으로 '리노'를 받게 되었고 고 3까지 신학대학에 가는 것을 목표로 했던 리노가 의대에 가기를 바랬던 엄마는 리노가 의지하는 성당 유치원 교사 모니카에게 리노가 의대에 갈 것을 부탁받는다. 그 해 여름방학에는 모니카의 부모님이 하시는 목장의 별채에 한 달간 머물며 의대에 가기 위해 박차를 가하지만 혈기 왕성한 리노와 그런 리노의 마음을 알면서도 장난인 듯 진심인 듯 대하는 모니카의 꿈같은 한 달. 리노에게는 리노가 태어나기 7년 전 돌무렵 사고로 죽은 누나가 있었고 모니카에게는 아들을 바라던 아버지가 계셔 두 집안에서는 스스럼 없이 리노와 모니카를 친 자식 양 예뻐해준다. 그런 리노와 모니카의 마음을 양쪽 어머니는 눈치채면서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모니카는 리노보다 7살이나 연상이기에 좋아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쉽게 표현할 수도 없는 상황인 리노와 모니카.
모니카의 부모와 이준걸의 부모가 집안끼리 맺은 혼약 때문에 모니카에게 편집증 증세를 보이며 집착하는 이준걸은 검사인 아버지와 대학교수인 어머니, 본인은 의사에 훤칠한 미남이지만 여자 관계가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 알게 된 모니카는 그에게 파혼할 것을 이야기하며 근무하던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유치원 교사가 되었지만 이준걸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준걸의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마음과 리노의 마음을 외면하며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지만 다 잊고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란 모니카의 바람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러는 사이 리노는 의대에 합격하게 된다.
애틋한 두 남녀의 사랑, 7살이란 나이가 자꾸만 그들을 괴롭게 따라다니게 되고 그저 평범하게 살기를 바랬던 모니카의 삶은 예상과 달리 자꾸만 엇나가게 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리노의 삶 또한 행복할 수 없으며 의도하지 않은 사건에 자꾸만 휘말리게 된다.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랬던 모니카의 삶은 불행할 정도로 흔들리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앞에 놓인 상황 또한 불안하게 비춰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어느 순간엔 제발 내가 바라던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음 짓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나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토록 힘들게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절절해 읽는 내내 어쩔줄을 모르게 만드는 김홍신 작가의 <바람으로 그린 그림> 찬 바람 부는 이 시기에 딱 맞는 아련함과 애절함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