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요 -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케리 이건 지음, 이나경 옮김 / 부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살아요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채플런은 신앙을 바꾸라고 설득하거나 가르치기 위해 찾아가는 게 아니다. 혹은 역사나 신학 수업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믿는 것을 상대방이 믿게 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채플런은 환자가 무엇을 믿는지, 무엇이 위로를 주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신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알아내도록 도움을 주려고 찾아간다. 채플런 자신의 생각을 가르치러 가는 것이 아니다." p169


어느 날 '장자'와 관련된 책을 보는데 한 지인의 죽음에 슬퍼하는 가족, 친인척, 가까운 이웃 주민들이 죽음 앞에 너무나 서럽게 울고 슬퍼하는 것을 보며 학자가 말하길 '생(生)과 사(死)가 등가(等價)이거늘 어찌 저렇게 슬퍼하는가..'라고 하였다는 구절을  보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죽음에 그렇게 슬퍼할 이유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 그런 그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이나 지인,

만약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생과 사가 등가'라는 말을 한다면 귓방망이를 얻어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겪어보지 못하면 절대 그 느낌과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게 내가 인생을 살아오며 터특한 얕은 지론인데

<살아요> 를 읽으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나의 느낌이 아닌 죽음을 맞이한 자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어떤 종류의 것들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케리 이건'은 '채플런'이다. '채플런'이란 직업이 생소하게 다가왔던 나에게는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어줄까란 당연한 생각과 연결되어졌지만 케리가 겪었던 회색이 아닌 흑과 백의 관점에서 그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그것이 직업이냐는 지인의 물음은 역시 모두에게 회색의 관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채플런'이란 생소한 직업은 매뉴얼에 나와있는대로 진행하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약을 투여해 줄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지는 글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물질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불평을 들어주며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해해주는 공감이야말로 환자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지게 다가올 것이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겪었던 아프고 두렵고 힘들었던 일, 용서받지 못할 일들을 충격을 먹게 될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기보다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이 더 가능할 것이고 평생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함으로써 자신 밑바닥 속에 감춰뒀던 자아의 편안함은 물론 눌러놓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해결책까지도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보면서 '채플런'이란 직업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살아요>는 케리가 '채플런'을 수행하며 만났던 환자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책이다. 지금 시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기도하고 아프기 전에 휘둘렀던 폭력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무도 호스피스에 찾아오는 이가 없는 환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상냥한 남편, 성공한 변호사, 애정 넘치는 할아버지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남자 이야기도 나오며 여러번 유산을 하고 겨우 얻은 아이가 품안에서 죽음을 맞은 엄마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이렇듯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 상황에서 나타나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환자들의 모습 또한 제각각이어서 이전까지 내가 생각하고 겪었던 죽음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달을 사이에 두고 아시는 두분이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그저 이제 볼 수없는 공허함과 서글픔에 대한 죽음만을 생각하며 슬퍼하기만했었는데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삶이었다. 잔인하게 살해된 누군가의 죽음에는 혀를 차며 분노했으면서  정작 그보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는 그저 안타까움이 섞인 슬픔만을 느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지금 당장 닥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 아니기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죽음 앞에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던 내 자신을 떠올리며 자신이 살아왔던 삶만큼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지만 마지막으로 가는 그 순간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할지, 그들의 살았던 삶을 죽음 앞에서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주었던 시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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