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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평점 :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큰 깨달음과 자연의 미덕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글로 입적하셨지만 늘
독자들 가까이 계시는 법정 스님.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이 책은 법정 스님이 그간 쓰셨던 글과 최순희라는 역사의 산증인이셨던
분이 불일암을 오르내리며 찍어두었던 사진과 함께 엮여 있다. 법정스님이야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워낙에 많이 알려져 계시지만 책 속에 실려있는
사진을 찍은 분은 누굴까? 살짝 궁금증이 들기도한데 그 사연을 보게 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해 옴을 느낄 수 있다. 최순희
할머님은 1932년생이신 법정 스님보다 8년이나 먼저 태어나셨고 러시아 하바롭스크와 평양에서 자라 이화여자대학교와 일본에서 유학하는 등
신여성으로서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했으며 사회주의자였던 남편을 따라 북으로 향했고 한국 전쟁 당시 지리산으로 들어가 남부군 문화지도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남다른 활약과 정신력을 가지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남부군의 말로를 보여주듯 국군에 생포되셨고 북에 두고 온
아들과 지리산에서 함께 투쟁하던 동료들을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등으로 많은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게 되고 법정스님과 인연이 닿아 힘들었던 삶에서
조금씩 평안을 되찾으셨다고 한다. 그런 최순희 할머님이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불일암을 오르내리며 허드렛일을 하는 틈틈이 담은 사진들은
불일암 주변의 자연을 담고 있는 사진들이 주를 이룬다. 불일암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고 있어 같은 장소지만 매 사진마다 다른 느낌이 들고 사진과 더불어
법정 스님이 생전에 쓰셨던 글들이 좀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을 벗삼아 때로는 텃밭에 심은 배추와 무를 동물들과
나눠먹기도 하고 고즈넉한 불일암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걸기도하며 아무 욕심없이 그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는 식물들에게 인간의
나태함과 욕심을 반성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응어리들을 불일암과 법정스님으로부터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것은 다시금
독자에게 전해져 온전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다. 오만하고 교만한 인간의 덧없는 마음은 대자연의 넉넉함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책을 덮을 때까지 함께했고 그런 대자연 앞에 너무도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기에 스스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글귀들이
법정 스님의 글을 읽게 되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