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 손병희 평전 - 격동기의 경세가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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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민족대표 33인으로 3.1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라고 알려졌던 의암 손병희. 최근 유명한 역사쌤이 3.1 운동시 독립선언문과 관련하여 민족대표 33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룸싸롱격인 태화관, 당시 손병희와 내연 관계였던 주옥경이 있던 그 술집에서 낮부터 술을 마셨다는 강의가 논란이 되어 구설수에 올랐던 일이 바로 어제였어요. 기존에 우리는 수업시간에 민족대표 33인 인물 중 한분으로 알고 있던 인물의 반전 설명을 듣게되니 책과 강의 내용이 겹쳐져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답니다.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역사란 것이고 그 시선의 다름으로 인해 굉장한 왜곡과 오해가 만들어지는 것이 역사인 점을 감안할 때 역사에 대한 발언이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에요. 사학자 사이에서도 파가 나뉜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보았기에 관련책들을 읽으면서 다가오는 글귀의 다양성에 혼란스러움을 많이 느꼈던 것도 또한 역사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역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그것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관점이든 모든 관점에서 다가가 그것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에 책을 읽던 시점에서 터진 그 일에 대해 또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추천하는 글에 천도교종학대학원 원장은 손병희의 업적이 실제 그가 이루었던 업적보다 미미하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속상하다고 적어놨어요. 친일파와 기생과 놀아났다는 등의 이야기까지 전해듣게 되어 참담함 심정이라는 말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 무엇이 되었건 올바른 시대상황을 바라보고 다가가는 것이 또한 우리 후손된 입장이라는 사실을 책을 보며 깨닫게 되었고 교과서에서 만나 뵈었던 의암 손병희라는 인물은 상상했던 것보다 성격이 불같은 분이라는 걸 일화를 보며 알게 되었답니다. 지금의 시선에서 따지면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 손병희 선생이 살던 시대였다면 가능했던 일화들이 소개되는데 결혼 당시 손병희의 서자격인 출생신분을 따져 혼사를 시킬 수 없다는 장인어른에게 "선 본 값을 내든지, 혼인을 승낙하시든지, 그것도 아니면 내 주먹맛이라도 한 번 보고 가셔야 합니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장인어른의 눈에는 들어 결국에는 결혼 승낙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런식의 일화들은 지금 상황으로서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강직하고 정의로운지를 알 수 있어 손병희 선생의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잡혀 수감소에 있을 때 재판장에게 앞으로도 평화적 독립운동을 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던 그의 또 다른 일화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해방된 해 백범 김구 선생이 환국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우이동 봉황각에 묻혀 있는 의암 손병희의 무덤이었다는 사실을 보며 백범 김구 선생이 제일 먼저 찾을 정도로 존경해마지않던 인물이었다면 의암 손병희 선생에 대해 왜곡된 내용들에 대해서 더 많이 추적하고 바로잡는 것이 우리 후손된 자들의 사명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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