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좋아했던 작가님이나 기대되는 작가님들의 추리 단편집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이미 비슷한 분류의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독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문장력이 뛰어나거나 트릭이 신선하거나 해야 할 텐데 그 미묘한 차이에서 입맛에 맞냐 안 맞냐가 판가름 나니 글을 쓴다는 직업, 자칫 식상할 수도 있을 추리라는 분야에서 독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란 상상보다 어렵겠구나 싶다.
작년 황금펜상 수상작은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는데 2023년도 작품은 기대 이상이라 작품마다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먼저 등장하는 박소해 작가님의 <해녀의 아들>은 오래전 4.3 사건의 기억을 현재와 연결해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담은 소설이라 이런 시도의 소설들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 그래서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4.3사건의 실제 잔인한 내용들은 소설 속에 자세히 담겨 있지 않지만 표현된 문장만 봐도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고 잔인했는지 유추할 수 있어 소설을 통해 4.3사건의 진상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었던 작품마다 역시..라는 수식어가 붙게 만들었던 서미애 작가님의 <죽일 생각은 없었어>는 역시란 수식어에 맞게 한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는데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성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꿔 낯선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김영민 작가님의 <40피트 건물 괴사건>은 '가와이 간지' 작가의 트릭이 떠오를 정도여서 내심 반가움이 더했던 작품이었는데 평소 이런 트릭을 즐겨 하지 않음에도 일본 소설에서나 주로 등장하던 트릭을 앞으로 한국 소설에서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게 했던 작품이다.
여실지 작가님의 <꽃은 알고 있다>는 어떤 전개로 이어질지 알만한 이야기지만 몽환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칠만한 파리떼의 묘사에 저절로 몸이 떨리는 증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홍선주 작가님의 <연모>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밀당을 담고 있는 내용인데 읽으면서 '설마 그런 건가?' 싶었던 내용이 그대로 이어지지만 이 또한 신선한 느낌이 있어 즐겁게 읽은 작품이다.
홍정기 작가님의 <팔각관의 비밀>은 굳이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들어봤음직한 일본 소설의 제목이 연상되는 작품이라 궁금했는데 작가님이 밝혔듯 일본 소설의 <십각관의 살인>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시도라 기분 좋게 읽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송시우 작가님의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은 <선녀를 위한 변론> 단편집에 실려 있었던 작품이라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다시 읽어도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 때문에 답답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드라마나 비슷한 소설의 작품들이 있을 만큼 충격적인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내용이라 다시 읽어도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짓누름을 경험하게 되는 소설이다.
2023년 황금펜상 수상작은 실린 작품 모두 기대 이상이었고 지금껏 읽었던 황금펜상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데 자주 보지 못했던 시도들이 독보였던 작품들이라 내년 수상작이 어느 때보다 더 기대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