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정세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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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제목만 보면 치열하게 사는 젊은이가 쓴 에세이로 보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다. 처음 접해보는 작가님의 글이라 어떤 예상도 할 수 없었기에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판을 어떻게 깨줄 것인가가 제일 흥미로웠던 지점인데 비슷한 구도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숲을 벗어나려면 다른 길로 가라>는 방 두 칸의 반지하 방에 사는 주인공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중학생 딸과 임신 중인 아내, 주인공의 남동생에 치매를 앓는 아버지까지 모시고 사는,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주인공의 팍팍한 삶에 일단 숨통이 조여오는데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던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며 남긴 부동산으로 말미암아 가족들은 활기를 되찾는다. 하지만 고생이 끝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아버지가 물려주신 부지에서 시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두 번째로 등장하는 <안티 바이러스>는 도박빚을 진 부모님 때문에 호적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주인공 무명의 이야기로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소설이 떠올라 이야기가 계속 겹쳐져서 다가왔는데 다른 점이라면 결말이 우울하지만은 않다는 점이었고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무명으로 인해 세상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 기억에 남았다.

세 번째 이야기 <죽어도 좋아>는 노총각인 응수가 선애라는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로 볼 것 없는 자신과 다르게 시골 마을 남자들이 침을 흘릴 정도로 매력 있는 선애에게 추파를 던지지만 결국 선애는 응수를 선택하여 결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결혼 전 그녀의 곁을 맴돌던 의문의 남자의 정체가 보험조사관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들은 전 남편과의 사별 사연은 사별한 남편이 한 명이 아니라 세명이라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뒤이어 등장하는 <조작된 기억>은 최근의 사건부터 몇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로 안갯속 아리송한 느낌을 마구마구 뿜어내는 소설이다. 느닷없는 구도와 예견된 줄거리 흐름이 예상되어 쫄깃한 느낌은 덜했지만 기억을 조작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나는 어떤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할까란,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던 소설이고 뒤이어 등장하는 <우리 별에 왜 왔니?>, <지극히 사적인 세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이돌을 목표로 했던 주인공이 아이돌이 되지 못하고 현실에 내몰렸을 때의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던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까지 대체로 단편들이 어둡거나 불우하여 암울함을 뿜어내는 이야기였으나 의외로 예상 밖의 결말을 내며 기대 이상을 주었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조금 아쉬웠던 작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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