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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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최근 이스라엘 전쟁까지 미디어로 접하는 전쟁의 실상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으리라. 미디어나 글로 접하는 것도 이렇게 참담하고 처참한데 바로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팔, 다리가 잘려나가 신음하다 죽음에 이르는 것을 목격한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언젠가 6.25 전쟁을 겪으신 분들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전쟁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시면서 자신이 겪은 것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이 전쟁이었노라고 말씀하셨다.

실로 전쟁영화나 소설이라 하면 피부로 와닿는 정도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최근 불거진 전쟁 상황이 더해져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는 다른 소설보다 더 깊게 와닿았던 것 같다.

40여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 이바노프스카야, 아버지를 사진으로만 보고 자란 세라피마는 정규 교육은 물론 독일어까지 공부한데다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배운 사격 솜씨 또한 나무랄 데 없는 소녀이다. 작은 마을이기에 가족같이 지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기 위해 엄마와 사슴 사냥을 나섰던 세라피마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독일군들에 의해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아침까지 웃으며 인사 나누었던 이웃들이 처참한 몰골로 하나 둘 총에 맞아 쓰러지고 그것을 바라보던 엄마가 우두머리에게 총을 겨누던 찰나 오히려 엄마가 독일군에게 먼저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바로 옆에서 처참하게 죽은 엄마를 목격한 세라피마는 독일군 앞에서 그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마을로 끌려가 독일군들 앞에서 강간당하려던 순간 붉은 군대의 등장으로 생명을 구하게 되고 그곳에서 이리나를 만나게 된다.

이미 죽은 엄마의 몸에 석유를 뿌려 태우고 아끼던 세간살이를 깨부수던 이리나를 향한 세라피마의 분노는 독일군에 대한 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그것을 이용하여 이리나는 세라피마를 소녀 저격수로 키우기로 하고 소녀 저격수를 훈련시키기 위한 장소로 데려간다. 그 곳에서 만난 비슷한 연배의 소녀들은 세라피마처럼 가족을 잃고 이리나를 만나 모이게 되었고 다들 전쟁으로 인해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서로 끈끈하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소녀들. 눈앞에서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현실에서도 그녀들의 순수한 모습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한창 공부하고 사랑하며 미래를 고민할 나이에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사격 연습을 한다는 게 가혹하고도 슬프게 다가왔다.

일본인이 쓴 독소전쟁 소설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가장 크게 다가와졌던 것 같다. 잘 모르던 역사 공부를 다시금 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전쟁에 대해 방관하는 태도만으로 있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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