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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남편의 학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도망쳐야만 했던 '홍', 어린 두 아들과 자신의 몸을 의탁할 수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들에게 사회적 보호도, 경찰의 울타리도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고 홍은 무료로 쉼터를 제공해 주겠다는 문구에 홀려 두 아들을 데리고 교단에 들어가게 된다.
제약회사를 경영하는 부모님이 있어 경제적 여유로움을 누리며 살지만 부모로부터 약물 실험을 당했던 '효'와 '경', 오빠인 효와 달리 경은 아버지로부터 성적인 학대도 당해야 했고 사는 것이 지독하게 고통스러워 약을 털어 넣고 자살을 실행한다. 늘 제약회사에 있었어야 했던 경은 자살 시도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마침 그 시기에 제약회사에 폭탄이 투여되면서 경의 부모님은 물론 여러 사람이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두 아들을 폭력으로부터 피하게 하기 위해 도망쳤지만 결국 교단의 입맛에 맞게 이용당하다 죽음을 당한 홍과 그런 어머니의 기억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분리되어 정작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한과 태, 자신들이 속해 있던 교단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 받고 싶었던 한과 교단이 설파하는 교리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태, 결국 태는 폭파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12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그렇게 12년이 흐른 어느 날 교단의 지도자들이 시신으로 발견되며 태는 그들과의 연결고리를 위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현에게 따뜻함을 느낀 경, 동성임에도 그들은 못마땅해하는 이사진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한다. 하지만 어느 날 경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제약회사를 현에게 넘겨주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교단 지도자들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건 수사를 맡은 륜과 순 형사, 트랜스젠더라는 경찰 내 따가운 시선에도 그와 함께 파트로 일하는 순은 륜의 그런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짓궂은 동료 형사들의 물음에 언짢은 말투로 일갈하는 순의 행동이 륜은 오히려 고맙게 느낀다.
교단과 교주, 의사와 외계인, 동성의 결혼과 임신, 트랜스 젠더 형사, 부모님의 학대와 약물 중독....
<고통에 관하여>는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고통에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이라 생각하여 호기심이 동했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는 이야기들과 안타깝고 그러하기에 대비책이 시급하지만 제대로 된 사회안전 서비스가 되지 않는 우리 사회 만연한 일그러진 모습들이 응축되어 있다. 깊은 뜻을 따라가다 보면 어리둥절할 수도 있는 소설이라 집중해서 읽어야 하지만 고통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고통이란 단어에 빗댄 듯해 너무 어렵게 정의 내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며 전진하지 않으면 세상은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가슴 한편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