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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피베리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7월
평점 :
초등학교 체육교사였던 기자키 준페이는 학교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하릴없는 날들을 보내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하와이 힐로에 위치한 호텔 피베리 정보를 듣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답답함에 평소 생각지 않았던 여행지 하와이로의 여행을 결심한 기자키는 3개월 동안의 체류를 목표로 떠나게 된다.
비바람이나 햇빛을 막아줄 최소한의 공간과 화장실 밖에 없는 힐로 공항의 첫 대면에서 기자키는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되지만 호텔 피베리의 모든 것을 해나가는 가즈미와 크지 않은 호텔 피베리의 매력에 금세 빠지게 되고 일본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기억을 저버리려 노력한다.
자신을 비롯한 일본인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서로의 여행을 방해하지 않고 함께 모이는 공간에서도 과하게 뒤섞이지 않는 여행지에서의 날들에 녹아들던 기자키는 실제 호텔의 주인이지만 호텔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남편 요스케를 둔 가즈미와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 풀장에서 투숙객이 사망한 채 발견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로부터 며칠 후 다른 투숙객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게 되면서 피베리에 묵고 있는 여행객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애초 피베리에 묵을 때 여권 검사를 따로 하지 않고 간단한 방명록 작성만 하기에 이름을 포함한 자신의 신상을 속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고 그것은 풀장에서 죽은 투숙객이 실제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점점 더 서로를 의심하는 분위기로 치닫게 된다.
투숙객이 두 명이나 죽으면서 호텔을 경영했던 가즈미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깊은 감정으로 발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가즈미와 기자키의 관계 또한 점점 미묘하고 힘겨워진다.
<호텔 피베리>는 일상생활에 지친 20대 젊은이가 잊고 싶은 기억을 떨치기 위해 하와이의 작은 동네에 위치한 피베리라는 호텔에 묵으면서 벌어진 사건과 얽혀있지만 살인사건의 전말이 엄청나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전말을 다 알고 나면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아주 낯선 구도도 아니기에 이질감 또한 느껴지지 않지만 살인사건보다는 하와이의 풍경이 아름답고 생생하게 다가와서 일상에 지쳐있던 현대인들이 떠나고 싶은 충동을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싶은 소설이다. 나 또한 소설을 읽는 내내 가고 싶었던 여행지 후보에 오르지도 않았던 하와이와 두 쪽이 함께 붙어있는 일반 커피콩과는 달리 한 개의 커피콩을 이루는 피베리라는 종자의 커피 맛이 더 궁금해져 언젠가 인생에서 만나게 될 힐로의 첫 만남을 상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