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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고길동을 부탁해 ㅣ 둘리 에세이 (열림원)
아기공룡 둘리.김수정 원작, 김미조 엮음 / 열림원 / 2023년 5월
평점 :
1983년 지구에 홀로 도착한 둘리.
초등학생 시절 TV를 통해 둘리를 보던 기억이 있다. 평소 만화를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둘리는 곧잘 보곤했는데 그럴 정도로 재미있었다기보다 늘 화로 가득차 있는 고길동의 캐릭터와 순진한 듯하면서 온갖 사고로 고길동의 화를 돋구는 둘리의 모습이 이상하게 궁금해져서 나도 모르게 찾아보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캐릭터에서 느껴지던 친근함에 끌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다시금 보게 된 둘리는 어린 시절 유치하게만 보였던 장면들이 이렇게나 철학적이었나 싶을 정도여서 새삼 감탄스러울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멋모르던 어린시절과 지금의 삶의 깊이가 달라서이지 싶다.
어릴 땐 학업의 스트레스나 부모님의 걱정어린 잔소리, 미래에 대한 걱정, 친구와의 관계가 주였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거기서 더 폭넓은 사회적 관계로 팽창해 어른으로서 견뎌내야하는 것들과 참고 인내하는 것이 비로소 어른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 그로 인해 인내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꾸역꾸역 참았던 것들이 쌓이며 내 안에서 곪아터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드는 허무함은 어릴 때와는 또 다른 삶의 고단함으로 이어져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늘 활기차고 즐거운 인생을 살고 싶은데 생각과 달리 그렇게 살아지질 않고 나도 모르게 축축 쳐져서 힘겨워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버겁고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더이상 한계라는 생각과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무기력함 앞에 처해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늘 화로 가득찬 고길동도, 무언가를 이루려는 고된 노력보다 세상을 너무 설렁설렁 살아가는 듯 보여 내심 걱정스러웠던 마이콜도, 엄마를 찾고 싶은 둘리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도우너와 또치도, 그들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 뒤엉키고 그로 인해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이나 교훈을 얻게 되는, 길다 생각했지만 그리 길지 않은 여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