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집밥을 좋아하지만 지쳐버린 이들에게
고켄테쓰 지음, 황국영 옮김 / 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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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도 메가톤급 공감이 절로 들 것 같은 책 <사실은 집밥을 좋아하지만 지쳐버린 이들에게>는 가정에서 요리에 있어서는 비자발적 구성원이 전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그런 이유로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책은 요리에 관심 없는 비자발적 가족 구성원이 궁금해할리도 없을뿐더러 흥미조차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까움이 많이 드는 책이다.

재일교포로 한국 이름은 고현철이며 제주 출신 한식 연구가인 어머니를 둔 일본의 유명 요리 연구가인 '고켄테쓰'는 남성이다. 당연히 여자로 생각하며 읽다가 자신의 요리 매니저인 아내의 이야기가 나와 나도 모르게 당황했는데 여자든 남자든 요리를 하는 일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싶었다. 일반인보다 요리에 관심이 많고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일로서의 요리와 가족을 생각하며 하는 요리의 감정적 격차를 담은 글을 보며 역시 요리는 나만 힘들고 험난한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내가 요리에 대해 버겁고 부담스러워 점점 놓게 된 계기는 미식가를 능가하는 남편의 영향이 컸음을 피해 갈 수 없다. 신혼 초에는 인터넷이나 요리 책을 보며 이것저것 만드는 것이 재밌어서 다양한 음식에 도전해 보곤 했지만 태어나 처음 시도하는 음식들이 엄마들이 해주는 집밥 뺨치게 맛있을 리가 없음에도 격려는커녕 시큰둥한 반응과 고생했다는 따뜻한 한마디, 심지어 입맛에 안 맞아 라면을 끓여먹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속상함에 부엌에서 혼자 울기도 했었는데 아마 그런 것들이 쌓여 가족들을 위한 정성스러운 음식에 대한 열정이 차츰 식게 되었던 것 같다.

전적으로 남편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피곤한 몸으로 가족을 위해 재료 손질부터 시간을 들여 음식을 만들었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같은 반응이 이어진다면 그것을 감내하며 음식을 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책을 읽으며 공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를 위한 정성스러운 매 끼니 식사는 대부분 엄마들의 담당이며 잦은 외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이라도 먹일라치면 나이롱 엄마가 된 듯한 죄책감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저자도 언급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영화를 볼 때 아이들이 아침에 각자 우유에 시리얼을 부어 대충 먹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국 엄마들은 아이에게 한국 엄마들은 꿈도 못 꿀 따뜻한 말을 해주면서 왜 음식은 저렇게 대충 먹일까 이해가 안 됐었는데 프랑스 엄마의 '나의 선샤인'이란 대목에서 그만 인생을 알아버린 느낌이 들었다. 죄책감에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선샤인을 당당하게, 당연하게 말하는 프랑스 엄마들의 멋짐이란!

이 책은 힘든 몸으로 나의 영혼을 파먹으면서까지 정성스러운 집밥에 얽매이는 엄마들을 위한 책이며 가족이지만 요리에 비자발적 구성원들을 일깨우기 위한 책이다. 저자는 너무 정성스러운 집밥에 얽매이지 말 것과 간단하게라도 간단한 영양소만 있다면 그걸로 한 끼로 충분하며 나의 정신을 좀먹을 정도의 정성스러운 요리에 얽매이느니 인스턴트 음식이라도 나의 행복함을 갉아먹지 않을 수 있다면 정형화된 끼니의 편견은 깨부수라고 이야기한다.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동안 엄마들은, 여자들은 너무 끼니에 얽매여 왔고 아이가 있다면 끼니의 죄책감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책을 읽고 나면 나의 행복이 좀먹지 않을 정도의 식사라면 요리책에 실릴 거한 한 끼에서 분명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제발 요리 담당자들이여 편해지고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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