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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 소외된 노동계급의 목소리에서 정치를 상상하기
제니퍼 M. 실바 지음, 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블루칼라로서의 자랑스러운 시절도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그저 미천한 직업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고 이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일 것이다. 교과서에서나 경제 성장에 대한 언급에서 비칠까 요즘 아이들은 체감할 수도, 공감할 수 없을 이야기지만 세월이 더 지나 이런 기록이 없다면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더 없어지지 않을까. 애초에 노동 계급과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읽다 보니 다음 세대도 이런 문제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런 의미라면 콜브룩에서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이 책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산업시대 블루칼라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광부, 광부와 광산간의 오랜 갈등과 높은 노조 가입률, 민주당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자랑하는 곳인 콜브룩의 저소득 백인 노동계급 남녀에서 시작된 조사는 미국의 여러 곳에서 보금자리를 찾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인종차별로 콜브룩까지 흘러들게 된 라틴계 미국인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까지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옛날의 영광은 희미해져 잊힌 곳이지만 같은 저소득층이면서도 서로 보듬고 같이 살기를 희망하기는커녕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심은 상당히 뿌리 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그들을 그렇게 몰아가는 정치인들의 정책과 상당하다는 것을 피해 갈 수는 없을 듯하다.
재미있게도 저자가 콜브룩의 노동 계급을 조사하던 시기는 힐러리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노동 계급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왜 그를 지지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읽기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는데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당연히 힐러리가 당선되리란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을 먹었고 그를 찍은 계층이 가난한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먹었었기에 왜 그들이 트럼프를 뽑았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와 같은 궁금증도 해소해 주고 있다.
정치 얘기하면서 이러다 칼부림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특히 부모님 세대와 정치 얘기를 하면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라 웬만하면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정치 얘기는 피하게 마련인데 늘 의아했던 것이 왜 못 사는 사람들이 소위 상위 1%로 잘 살아왔고 여전히 잘 사는 사람을 지지할까였다. 잃은 게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이 쥐고 있는 작은 것도 아까워 내놓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오래전부터 학습하고 체감해왔던 장본인들이 왜 그렇게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못 뽑아서 안달일까? 심지어 기성세대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기득권에 누군가 칼날을 겨누기라도 하면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많이 봐왔는데 이런 장면이 책에서도 등장하고 있어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이런 구도는 없어지지 않겠다는 절망감만 더해졌던 것 같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지만 없는 사람들의 몫까지 더 거머쥐려는 계층과 그들이 정치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더 몰락시키며 서로 연계하지 못하고 분열하게 만드는 공약으로 공략한다며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투표할 의지도, 어떤 정당을 지지할 열정도 없으며 젊은이들이 마약에 중독되어 일할 의욕이 없어도 사회적 복지 시스템으로 연명하는 것은 민주당 때문이라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그가 돈을 많이 벌었던 기업가였기에 자신들이 열심히 일했던 예전의 영광을 되찾아줄 것이라는 주장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란 오랜 입장을 고수해왔었다.
'그럴 수도 있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란 허울좋은 생각을 하면서도 왜 그들을 지지하는지, 당선이 되면 없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질게 뻔한데 왜 그들을 지지할까... 그것에 기인하는 원초적인 궁금증이 늘 있어왔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해소되지 못한 부분이 조금 후련해진 기분도 든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그래서 더 지지하면 안 되지 않을까? 가 아닌, 그래서 지지할 수 있었던 거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쩌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지만 읽어서 좋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