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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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크게 아프신 곳은 없었는데 마트에 다녀오시는 길에 쓰러져 그대로 병원 신세를 지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사람들은 갑작스럽지만 병수발을 들지 않고 보냈다며 호상이라고 하겠지만 아무 준비도 못 한 가족들에게는 그런 말이 들리지 않을 터, 하지만 정신없었던 장례식보다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시어머니는 모토코가 사는 집에서 전철을 타고 한 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에 사셨는데 집에 있는 짐을 정리하지 않으면 다달이 집세가 나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처분하는 것이 관건이었지만 문제는 시어머니가 혼자 사시던 집에 짐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데 있었고 일에 치여 바쁜 남편 대신 모토코가 일이 없는 틈틈이 들러 정리해야 했으니 시어머니 집 정리 때문에 일상생활까지 엉켜버려 모토코는 속상하기만 하다. 업체에 맡기자니 본인도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천만 원 가까이 드는 비용도 감당할 수 없기에 직접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지만 파도 파도 끝없이 나오는 짐 때문에 모토코는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아무도 없는 빈집에 누군가 있었던 듯한 흔적까지 발견되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유품이 명품이거나 고급 진 도자기 세트라면 충분히 쓸만하겠지만 한 번도 쓰지 않고 세월만 오래된 물건들이 너무 많았고 싼 게 비지떡이라고 샀던 물건들은 모토코의 구미에 전혀 맞지 않는 것들 뿐이었으니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기보다는 짐을 얼른 치워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모토코는 심란하기만 하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연립주택을 오르내리느라 50대인 모토코는 신체적 부담까지 짊어지게 된다. 결혼해서 한 번도 집 정리를 해보지 않은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오롯이 모토코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분통과 답답함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파도 파도 끝없이 나오는 물건들, 뒤룩뒤룩 살찐 토끼와 미덥지 않은 이웃들, 귀신이 사는 듯한 집의 느낌은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웠을 텐데 구시렁거리면서도 돌아가신 시어머니 흉을 보는 모토코가 나름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지랖 넓게 남일에 참견하고 비싼 것보다 싼 것만 잔뜩 쟁여놓는 시어머니였지만 모토코는 짐을 정리하며 이웃들이 들려주는 생전 어머니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절제가 미덕이며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짐을 정리하신 어머니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시어머니를 미워할 수 없게 된 모토코, 말로는 어머니와 비교하며 구시렁거렸지만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모토코는 엄격했던 어머니와 다르게 시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놨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계실 때 더 많이 찾아뵙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모토코보다는 어리지만 중년을 들어선 나이와 하루하루 다르게 늙어가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자식이라면 퍽 와닿는 이야기가 많을 텐데 돌아가신 후에 부모님 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기에 소설 속 모토코의 이야기가 타인의 이야기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불편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소설에 잘 담아내는 작가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책은 지금껏 읽은 책 중에 너무 무겁게만 다가오지 않아 아무래도 부담이 덜했는데 아직은 그때가 되지 않아 그런지 이기적인 마음이 나 자신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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