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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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시작하기 전 위화 작가님은 <원청>이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적었다. 이 시기에 중국은 치욕스러운 영토 할양과 배상금 지급을 강요받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조선의 상황 또한 자유롭지 못했기에 원청의 그것과 달리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다는 작가님의 말은 한국 독자로써 꽤나 무게감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시진에 사는 린샹푸는 천여무를 이르는 비옥한 땅인 완무당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가 운영하는 목공소에서 만든 제품은 100여리에 집을 채울 정도로 영향력을 미쳤고 시진에서 선뎬까지 육로든 수로든 린샹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미 그의 이름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하지만 남쪽인 시진에서 강한 북쪽 억양을 쓰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원청>은 황허 북쪽에 위치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린샹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수재인 아버지와 가세가 기울기는 했지만 경전을 공부했을 정도로 지식을 겸비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린샹푸는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읜다. 자신의 목공 기술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들었으며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린샹푸를 키우며 벽안에 금괴를 채우며 부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도 린샹푸가 스무 살이 되기 전 돌아가시며 홀로 남겨진 린샹푸는 아버지가 도와준 소작농의 자식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목공일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멀고 먼 남쪽에서 온 남매가 하룻밤만 재워달라며 찾아온다. 얼굴이 하나도 닮지 않은 남매는 린샹푸에게 자신들은 원청이란 곳에서 왔으며 부모님을 여의어 친척을 찾아가는 길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말수가 적고 이쁘장한 샤오메이와 눈이 마주친 린샹푸는 평소 그답지 않게 말이 많아진다. 그날 밤 자리에 누운 린샹푸는 샤오메이가 다음 날 떠나지 않기만을 바라는데 그의 바람을 들어주기라도 한 듯 갑작스럽게 몸이 안 좋아진 샤오메이를 두고 오빠는 작은 아버지를 찾은 후 동생을 찾으러 오겠다며 린샹푸에게 동생을 부탁하고 집을 나선다.

그렇게 린샹푸의 집에 남겨진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어머니가 짜던 베틀을 짜고 집안일을 거들며 린샹푸의 아내가 되지만 어느 날 절에 다녀오겠다며 나선 샤오메이는 그 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루 이틀이 지나며 샤오메이가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자각한 린샹푸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금괴가 반이나 없어진 것을 알게 되고 배신감과 아픔에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었으니 목공일을 배우고 농사일을 하는 동안 샤오메이에 대한 분노는 차츰 사라져버렸으나 그런 그에게 몇 달 만에 샤오메이가 만삭이 된 몸으로 다시 찾아오기에 이르는데...

대대로 내려오던 재산을 훔쳐 달아났지만 그것을 어디에 썼는지 말하지 않으며 린샹푸의 아이를 가졌다며 우는 샤오메이를 내치지 못한 채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살게 된 린샹푸는 또다시 샤오메이가 딸아이를 두고 집을 나간 것을 알게 된다. 이번에는 금괴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몸만 나간 샤오메이를 찾아 린샹푸는 재산과 집을 정리하고 샤오메이가 말했던 원청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멀고도 먼 대장정에 나선 부녀, 린샹푸는 젖먹이 딸에게 동냥젖을 물리며 남쪽으로 이동하고 원청은 아니지만 그녀가 썼던 낯선 억양과 지리적 위치가 시진이라고 판단해 그곳에 터를 잡게 된다. 하지만 샤오메이는 찾을 수 없고 자신의 수완으로 그곳에서 부를 이룬 린샹푸에게 공권력으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토비들이 등장한다. 토비들은 시진을 돌며 사람들의 재산을 수탈하고 잔인하게 학살하는 등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만 민중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왠지 낯설지 않아 보이는 그들의 행보와 시대적 배경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라고 말한 중국 독자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두고두고 가슴 깊이 되새기게 된다.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서로 다른 이야기는 그들이 숨 쉬었던 시대적 배경안에 갇혀 덤덤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원청을 찾았을까? 아직도 찾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포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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