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중단편 수상작 모음집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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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란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삼국지가 떠오른다. 삼국지를 제대로 읽지 않았고 이문열이란 이름은 알지만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기에 책을 적지 않게 읽음에도 <이문열 중단편 수상작 모음집>을 접하며 당혹감을 느꼈다. 중단편 수상작 모음집에는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영화로도 제작돼 알고 있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외에는 제목조차 처음 접해보는 글들이라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난해하거나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을까 싶으면서도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기분이라 설레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여섯 편의 단편 중 너무도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워낙에 어린 시절에 나온 영화였음에도 시기는 다르지만 학창 시절을 겪고 있었기에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전이 꽤 기억에 남았는데 그 외에도 제목부터 궁금증이 들었던 <익명의 섬>은 외딴 시골 동네의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주인공의 시선에서 집도, 가족도, 돈벌이도 없지만 동네 아낙네와 남정네들 사이에서 극명하게 갈리는 깨철이의 존재가 중심이 되어 흥미로웠다.

오래전부터 문중이 들어와 보금자리를 틀며 자리 잡은 산골 마을,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 수저가 몇 개가 있는지 서로 간 다 알 정도로 가까우며 폐쇄적인 동네에 친인척 관계도 아니며 노동을 하지 않는 백수임에도 하루는 이 집에서 밥을 빌어먹고 다음 날은 다른 집에서 밥을 빌어먹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집도 절도 없지만 날이 추워져 어떻게 할 수 없는 날은 남의 집에 비비적거리며 신세를 질 정도이니, 그조차도 어이가 없긴 하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도대체 깨철이는 어떤 존재인가? 란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하지만 드라마틱함을 상상한 것과 달리 깨철이의 존재는 인간의 본질적이고도 철학적인 사유로 비치고 깨철이의 존재를 용인하는 사람들이 심리는 소설을 다 읽고도 되짚어볼 만큼 쉽지 않다.

<이문열 중단편 수상작 모음집>은 중단편에 걸맞게 단편과 중편의 분량 차이가 있다. 그리고 글을 잘 쓰는 중년 작가의 노련함이 묻어난 세월감을 소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최근 젊은 작가들의 소설만 읽은지라 연륜이 묻어나는 글이 주는 색다른 느낌이 너무 오랜만이라 즐겁게 읽었는데 예전에 읽다가 포기한 삼국지와의 느낌과 다르게 푹 빠져들어 읽게 되어 이문열 작가의 진가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텐데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대와 다른 정치 이야기임에도 아버지 세대에서 흔히 엿보던 이야깃거리를 그대로 보는듯해 왠지 정겹게 다가왔는데 막 사회로 발돋움을 할 무렵이라 정치보다는 암담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많이 떠오르게 했던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과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새하곡 등, 시대성이 짙게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대거 등장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이문열 작가의 매력이 뭔지 맛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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