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로운 조선시대 - 궁녀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역사
조민기 지음 / 텍스트CUBE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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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왕권의 상징인 왕, 하지만 왕은 외롭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권력 앞에서는 부모 자식, 형제지간도 없지만 그렇게 왕이 되어도 신하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외롭기만 하다. 그럴 때 왕의 마음을 헤아려주며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여인네가 있다면 잠시나마 왕은 근심 걱정을 덜 수 있으리라... 지금껏 많이 보았던 사극 장면 중 하나이지 않은가?

조선시대 궁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까지 봐왔던 사극의 영향으로 비슷한 이미지가 생각날 것 같다. 미천한 신분으로 갖은 고생을 하다 왕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고 총애를 받으며 권력의 중심으로 우뚝 선 이야기는 극적인 신분 상승으로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반면 총애를 받는 후궁 때문에 왕의 정실 아내임에도 뒷방으로 밀려 면이 서지 않았던 왕비들도 있다. 여자로서 이런 상황들이 썩 좋게 다가올 리 없고 왕 또한 총애를 일삼다 손바닥 뒤집듯 마음을 바꿔 거들떠보지도 않던 왕비를 보듬는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인과응보처럼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그조차도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글들이 있어 착잡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무튼 지금까지 보았던 사극 레퍼토리는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았고 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과 여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단골 소재로 등장해 식상하다는 생각이 컸는데 <궁녀로운 조선시대>는 왕과의 불꽃튀는 로맨스가 아닌 조용한 삶을 살았던 궁녀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서 더 흥미로웠다.

9세에 입궁해 12년 동안 궁녀로 지냈던 창빈 안씨는 자순 대비의 뜻에 따라 중종의 후궁이 됐지만 오랜 세월 중종의 총애를 받지 못함은 물론 후궁이 아닌 궁녀로서의 품계를 받았음에도 오랜 세월 시기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해 문정왕후를 보필해 내명부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비록 왕의 관심과 품계가 높지 않았지만 그랬기에 후궁들의 질투를 받지 않았고 문정왕후조차 안씨를 살뜰히 보살폈으니 인생사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오래 남아 자리를 지킨 창빈 안씨는 후에 손자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는 기적을 만드는데 이 또한 평소 왕후와 대비의 측근에서 잘 보필하였기에 미운털이 박히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이 밖에도 당파 싸움으로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와 얽힌 궁녀 이야기도 등장하고 최근 사극 로맨스를 선보였던 정조와 성덕임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미모가 출중하거나 언어가 남다르거나 상대방의 심리를 잘 이용한다거나 궁중의 섭리를 알고 본분을 잘 지킨다거나... 등의 이야기에 걸맞은 궁녀들의 이야기, 왕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어느새 권력의 중심에 서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거나 반대로 총애를 받지 못해 뒷방 늙은이처럼 묻혔지만 결국엔 죽어서 품계가 올라가고 자신이 낳은 후대가 왕위에 오르는 이야기는 인생사 참 알 수 없음을 보여준다.

최근 조선왕조실록을 다양하게 해석한 책들이 출간돼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들의 이미지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같은 방향을 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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