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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오피스
말러리안 지음 / 델피노 / 2022년 11월
평점 :
흰나비가 가벼운 몸짓으로 팔랑거리는 듯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대기업 회사 직원의 투신 장면,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야근과 무차별적인 언어폭력, 회사를 그만두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를 안타까움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선택했을까 싶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소설이라고만 보기에는 왠지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비치는 장면이라 왠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블러드 오피스>는 대기업 식품 회사에 다니는 직원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자살을 선택한 직원의 삶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나가는 제욱 또한 엄격한 갑을 관계에서 언어폭력과 무리한 근무에 시달리는 중이다. 당장이라도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투자한 것들이 보기 좋게 빗나가 끌어쓴 사채까지 갚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돈을 빌려준 조폭은 제욱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조폭이 가지고 있는 성분 모를 원료를 제욱의 회사에서 주력하고 있는 만두에 넣으라는 강요에 제욱은 제대로 된 성분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식품 첨가물에 넣게 된다.
몇몇 사람들의 맛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찜찜하지만 상황을 되돌릴 수 없기에 그대로 진행하지만 조폭이 맡겼다는 업체 또한 믿을 수 없는 식품 불량 업체로 제욱은 최악의 상황까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급기야 사채를 빌려 쓴 조폭 사무실로 찾아갔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렇게 눈을 뜬 장소에서 제욱은 마스크를 쓰고 연신 기침을 하는 사람들과 방독면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괴이한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사고 후 복귀한 회사는 전보다 더 악랄하고 지독하게 변해있는데....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 먹고살기 위해 내 영혼까지 갈아마지않을 장소는 이미 그 자체로도 엄청난 부담을 주는 곳이다. 이윤과 연관되는 곳이기에 실적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회사 안에서도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내 암투는 보기 힘든 장면도 아니다. 그렇기에 공감과 서늘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1부에서 3부로 이어지면서 갑자기 방향을 전환하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함도 느껴졌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대기업의, 정부의, 돈 많은 인간들의 갑질 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공감과 동조와 울분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제욱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과 사건들에 마냥 몰입할 수없이 왠지 겉도는 느낌도 들었지만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일소는 좀 속 시원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