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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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화되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파친코>, 잘 다뤄지지 않았던 미묘한 국제 정세를 인물들의 삶을 통해 잘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소설이나 드라마를 접해보지 못했는데 <파친코>를 잇는 시대적 소설이라는 문구에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영특한 동물로 알려진 호랑이를 잡으러 평안도 깊은 산속에서 며칠을 보낸 경수,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 팔면 일 년 치 월급과 맞먹는 돈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경수는 아들에게 호랑이는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잡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바로 지금처럼 먹을 게 없어 가족이 굶어죽기 직전에 내몰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경수도 호랑이 사냥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호랑이 사냥에 나선 경수는 흔적을 따라 쫓던 호랑이가 성호가 아니란 것을 알고 쫓기를 포기하지만 이미 제대로 된 밥을 못 먹은 지 오래되었고 추위까지 덮쳐 힘이 없다. 까딱하면 목숨까지 잃을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처럼 길을 잃은 일본군을 만나 산을 내려오던 중 호랑이의 습격으로부터 그를 구해주고 후에 도움이 필요할 때 청하라며 이름이 새겨진 담뱃값을 받게 된다.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옥희는 여자애라는 이유로 기생으로 팔려가며 생각지도 않았던 삶을 시작한다. 그런 옥희를 중심으로 경수의 아들인 정호와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점철된 한철이 얽히며 한 많은 세월을 대변하듯 파란만장한 대서사시를 보여준다.

1917년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1965년까지 이어진다. 일제강점기부터 전쟁 전후의 격동의 시대를 겪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대하드라마처럼 장대하게 펼쳐지는데 이미 비슷한 소설들을 알고 있음에도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 등은 가슴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내려 했던 모습들이 보여 더 가슴 아프고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쓴 김주혜 작가는 한국 태생으로 9살에 미국으로 가족들과 이민을 갔다고 하는데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소설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 느껴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함을 엿볼 수 있는데 탄탄한 이야기 구성도 실로 놀랍지만 영어로 쓰인 소설을 한국말로 번역했다고는 생각돼지지 않게 매끄러운 문장들이 놀랍기까지 했다. 모쪼록 이 소설이 많이 알려져 <파친코>처럼 숨겨졌던 역사들이 제대로 비쳤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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