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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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사무실에 다니는 신견은 전날 술집에서 만난 여성의 집에서 밤을 지새우고 마침 그 집에 걸려있던 양복을 입고 출근한다. 첫눈에 반한 건 아니지만 왠지 묘한 느낌의 여성, 그리고 여자의 집에 있던 누군가의 양복을 입고 출근한 신견에게 형사 출신 탐정이 다가와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 여자의 뒤를 캔다. 여자와 함께 살던 남자는 행방불명 상태이며 탐정은 혹시 여자의 집에 있던 엄청나게 큰 화분 안에 남자의 시체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탐정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신견은 자연스럽게 퇴근하는 대로 그 여자의 집으로 들르게 되고 그렇게 사나에와 동거에 들어가게 된다.

왠지 낯설지 않은듯한 묘한 기시감이 드는 사나에를 신견은 복잡한 마음으로 대하면서도 탐정이 토해내는 그녀의 뜨악한 과거에도 신견은 그녀를 피할 수 없다. 어떤 강력한 힘에 이끌려 다시금 그녀에게 되돌아가고 마는 신견, 탐정이 말해준 사나에의 과거를 숨김없이 사나에에게 말하며 피하지도 못하면서 정말 사나에가 오래전 사건과 연관이 된 것인지, 함께 동거하던 남자조차 살해한 것은 아닐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오래전 종이학 살인사건이라고 이름 붙여진 살인사건, 아버지와 어머니, 청소년이었던 장남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건은 사람이 절대 드나들 수 없는 작은 창문이 열려 있던 것 외에 모든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으며 아름답던 아내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던 CCTV 조차 들고난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나체로 살해당한 엄마의 시체 위에 어지럽게 놓여있던 종이학 때문에 기묘한 미궁으로 남은 사건, 가족 모두가 살해당한 사건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사나에는 훗날 탐정의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고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신견과 사나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급생이었으며 행방불명 된 사람 또한 사나에의 학창 시절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사나에는 무엇 때문에, 정말 사나에가 범인인 것인지, 소설은 신견의 관점에서 계속 쫓아간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삶에 대한 강력한 희망조차 없는 이들, <미궁>은 미제 사건으로 남은 섬뜩한 살인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사나에를 쫓아가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인 신견조차 그런 사나에와 마주하면서 의심은 하지만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우울한 유년기를 보낸 사나에의 이야기들이 합쳐져 물먹은 솜처럼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사나에가 범인이냐 아니냐의 여부보다 소설은 이들의 한없는 염세적인 모습을 독특한 방식으로 담아낸 것이 주목할만한데 번역가는 이 작가의 소설을 흥미로워하는듯하지만 나에게는 조금은 낯설면서도 고구마 오십개쯤 먹은 답답함이 남았던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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