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궈징밍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4월

가정폭력, 왕따, 청소년 임신을 다루었다는 예고에 읽기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던 작품이다. 주제가 그러하기에 어둡고 힘든 감정일게 뻔하기에 과연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움이 앞섰는데 그럼에도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던 건 같은 주제로 그간 읽었던 한국 소설이나 영미 소설과는 다른 중국이란 나라의 문체가 궁금했기 때문이었지만 사실 읽으면서 고구마 백 개는 먹은듯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졌기에 그래서 더 이 작품이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햇빛도 들지 않는 좁다란 골목에 자리한 고만고만한 주택들, 공간 없이 지어진 까닭에 이웃집 사생활이 보호될리 만무한 그곳에 이야오와 치밍이 살고 있다. 훤칠한 외모에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 치밍과 도도하다고 소문난 이야오의 집은 듣고자 하면 서로의 소음이 들릴 정도로 가까이 벽을 두고 있다. 빈민촌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비좁고 악취나며 사생활조차 보호되지 않는 그런 곳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치밍과 이야오, 하지만 자라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업이 잘 되며 지금 사는 집이 팔리기만 하면 고급 아파트로 이사 갈 치밍과 다른 살림을 꾸려 집을 나간 아버지 대신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엄마와 둘이 남게 된 이야오의 가정 형편이었으니 앞으로 다가올 현실만큼이나 이야오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자식까지 본 아버지란 존재와 몸을 팔아 생계를 꾸리며 이야오에게 온갖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는 어머니 린화펑, 사실 소설을 읽으며 어머니 린화펑 캐릭터가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나가 죽으라며 온갖 폭언과 손찌검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가 이야오가 성에 못 이겨 발악하는 모습을 뒤로하며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린다는 대목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긴 했지만 자신이 처한, 사회생활을 하려 해도 이렇다 할 비전이 없는 자신의 처지와 남편에게 버림받았으며 자신조차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상황에 딸까지 건사해야 함으로써 느껴야 할 심리적 부담감 등은 아이를 위해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보려 하는 모범적인 어머니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만 어쩌면 너무 현실적일 수도 있겠기에 많은 생각이 들게 됐던 것 같다.

그런 어머니를 둔 이야오는 언제나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리자 이야오에게 모멸감을 날리며 모른척하게 되고 그런 이야오를 지켜보는 치밍의 마음은 복잡하고 아련하기만 하다. 이야오조차 치밍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지만 더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곁을 두지 않으면서도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치밍에게 다가서는 여자들에게 치밍이 자신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위에 서려 하는 모습과 그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모습 등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야오의 상황을 더욱 힘들게 몰아간다.

감정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촘촘한 그물처럼 감정을 옥죄어 오는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는 읽는 내내 슬픔과 분노, 안타까움, 이해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 그럼에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경악스럽게 다가와 힘들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아프게 했어야 했나 싶은 생각에 작가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었고 책을 덮으면서 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독자로서 막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