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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레베카 하디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평점 :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장성한 자식과 손주들을 둔 밀리 고가티, 83이란 나이에도 운전을 하며 혼자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가는 곳마다 이웃들과의 인사는 물론 조금 과한 참견까지 곁들여야 하는 인물이므로 젊은 사람들에겐 피하고 싶은 인물이지만 겉으로 쾌활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쌍둥이 밑으로 두 아이를 더 둔 아빠이자 밀리 고가티의 아들인 케빈은 얼마 전 실직한 상태이다. 아내인 그레이스가 버는 수입으로 살림을 꾸리며 케빈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실직한 상태이고 네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장이므로 그가 가진 불안감은 형용할 수 없지만 사춘기를 맞이한 쌍둥이 에이딘과 누알라의 불화, 근처에 살고 있는 엄마인 밀리가 빵빵 터트리는 사고까지 더해지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완벽하게 예쁜 외모로 태어난 언니 누알라와 달리 6분 나중에 태어나 동생이 된 에이딘은 그런 언니와 너무도 판이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인기가 없다. 가족들은 오로지 누알라만을 숭배하고 칭찬하며 자신은 늘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에게 뒤로 밀려난 기분이라 사춘기를 맞은 에이딘의 기분은 날을 더할수록 별로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부모님은 에이딘을 기숙사 학교가 있는 곳으로 보내려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심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딸이 있는 미국으로 향하려던 밀리는 마트에서 물건을 슬쩍하다 경찰에게 넘겨진다. 고가의 비싼 물건도 아니고 굳이 훔칠만한 물건도 아니지만 그로 인해 경찰서에 연행된 밀리는 아들인 케빈에게 연락이 가는 게 쪽팔리 수밖에 없지만 나이를 앞세워 자신의 실수를 어영부영 넘어가기엔 아들인 케빈의 반응이 너무 강경하다. 크리스마스에 미국으로 건너가려던 계획은 아들로부터 취소당하고 자신을 돌봐줄 사람을 들이는 조건을 제시받은 밀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요양원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태지만 밀리는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생활이 그저 싫을 뿐이지만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비아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녀와의 생활에서 밀리는 조금씩 생활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조금 많이 정신없어 보이는 여느 가정집처럼 보이는 밀리 고가티 가족이지만 모두 각자의 문제를 끌어안고 모일 때마다 상대방을 향해 가시를 세우고 있는 모습에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로서는 울렁거릴 정도의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비꼬며 악의를 드러내는 가족들의 티카타카식 대화법은 언제 빵하고 터져버릴지 몰라 내심 조바심을 느끼게 만드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가족이나 이런 모순들을 끌어안고 있기에 낯설지 않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울렁거릴 정도의 불안감 때문에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예상될만한 밀리의 이야기와 가족 개개인들의 고민거리는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한다. 가족의 모습이 다 그런 거지,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지, 가족이기에 기대고 싶은 거지... 싶은 수많은 감정들이 불안한 감정 속에서도 아이러니하게 유쾌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아마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두었거나 어머니를 보내고 홀로 계신 아버지를 둔 자식이라면 밀리의 행동들이, 말들이 더 가슴 짠하게 다가와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