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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 - 사르담호 살인 사건
스튜어트 터튼 지음, 한정훈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2월
평점 :
1634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무역 회사인 동인도 회사, 그중에서도 수익성이 가장 높은 바타비아 총독인 얀 하안은 후추, 향신료, 비단 그리고 온갖 보물을 사르담호에 싣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그리고 사르담호에 총독의 아내인 사라와 딸 리아, 총독의 정부인 크리지와 두 아들, 동인도 제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이었지만 총독이 맡긴 사건에 연루돼 죄인의 신분으로 배에 오른 새뮤얼 핍스와 핍스를 안전하게 암스테르담까지 호송하기 위해 사르담호에 오른 아렌트, 그 외 기묘한 인물인 샌더와 이사벨, 사르담호 통솔하는 선장과 선원들이 등장한다.
바타비아에서 암스테르담까지 장장 8개월간의 사르담호의 긴 여정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으니 아내인 사라와 크리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얀 하안 총독은 암스테르담으로의 출발을 강행한다. 그리고 배에 오르기 전 사르담호에서 일했던 절름발이 목수가 화염에 휩싸이며 내뱉은 저주의 말은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항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귀족층이 머무는 공간과 8개월간의 항해 동안 1/3은 죽어나갈 밑바닥 선실의 격차, 여자와 남자의 신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나 거대한 파도를 가르며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를 불안감과 흥분은 등장인물들이 감추고 있을 사연이 어떻게 발현될지 호기심과 결합해 분위기를 더 고조시킨다.
욕망과 권위에 물들어 있는 총독의 강행으로 시작된 항해,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받지만 그것이 어떠한 해악도 되지 않는 시대에 귀족답지 않게 겸손한 사라와 시대를 앞섰지만 당시 마녀라는 족쇄에 채워질 수 있어 집안에만 갇혀 있었던 리아, 마녀 사냥꾼인 신교 목사인 샌더 커스와 그의 제자인 이사벨의 행동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사냥에 나갔다 정신을 잃고 새겨진 흉터가 악마의 표시인 올드 톰과 연관되며 기묘한 사건들이 배 안에서 벌어지기 시작한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악마의 소행인 것일까? 아니면 악마의 소행을 빈 인간의 것일까? 소설은 초입부터 흥미진진함을 놓치지 않는다 장장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방대한 분량과 다양한 등장인물의 등장에도 헷갈리거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미신적 영역과 그것에 기대는 인간의 나약함, 거대한 욕망과 인간에 대한 증오가 결합되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끈다.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게끔 잘 표현해냈다는 점도 소설을 더 리얼하게 읽어낼 수 있었던 요소인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