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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워크 도깨비 - 경성, 무한 역동 도깨비불 ㅣ 고블 씬 북 시리즈
황모과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평점 :
그전까지 호롱불로만 생활하던 사람들 눈에 비친 전기 불은 그 자체로 엄청난 충격이지 않았을까? 혼란스러운 정세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그만 모든 것을 망각하고 넋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이끌리듯 쳐다보게 되는 불빛에 홀려 그 속으로, 그 생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경성'이라는 시대상에 호기심이 일었던 소설 <클락워크 도깨비>는 참 묘한 소설로 기억될 듯하다.
대대로 쇠를 다루었던 집안,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쇳물을 녹이고 쇠를 두드리며 장인의 정신으로 만들었던 것들이 연화의 눈에는 왠지 답답하게만 보인다. 산 아래 일에는 관심을 끄고 굳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이 정성껏 만든 것들을 사람들에게 손을 보태가며 팔려 하지도 않는 답답함은 연화를 산 아래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을지 모른다. 늘 그 자리에 우직하게 서있는 아버지였지만 세상일에 담을 쌓은듯한 모습은 연화로 하여금 조금은 반기를 드는 구실이 되었고 그렇게 바깥세상에 관심을 돌릴 때쯤 연화는 도깨비불 갑이를 만나게 된다.
갑이는 연화의 재능에 밑거름이 되어 주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세상은 너무 편협하고도 야비하였다. 재능을 시샘과 여성이라는 틀에 가둬놓고 시기하고 가로챈 것조차 모자라 연화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까지 하였고 그런 일들을 겪으며 연화는 아버지가 왜 산속에서 틀어박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시련을 겪은 연화는 일제 침략과 조선 시대상이 반영돼 손가락질 받은 진홍과 함께 그녀가 낳은 딸을 데리고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살게 되고 자신들이 일궈낸 것들에 보람을 느끼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선택한다. 척박한 깊은 산을 일구며 살아가던 그녀들은 자신들을 찾아온 부모 없는 아이들을 거두며 함께 살아가지만 바로 보지 못한 세상에 휩쓸려 아이들을 미얀마로, 일본으로 보내게 된다. 아이들은 이후에 돌아오지 않았고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다.
급변하는 상황이었던 일제 침략기, 눈 뜨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며 삶을 위태롭게 하던 시절, 여성이라는 성으로 살아야 하는 고단함과 그저 성 노리개로 전락하며 생사조차 알 수 없어진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에 도깨비불 갑이와 연화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역사지만 여러 각도로 생각하며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뻔히 아는 역사임에도 도깨비불 갑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어 기억에 남는 소설 <클락워크 도깨비>, 작가의 다음 편 이야기도 기대하게 만드는 소설로 충분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