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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 - 상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월
평점 :
활인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자를 일컫는다 한다.
고로 활인서에서 가진 것 없고 천한 신분의 병든 자들을 돌봐주는 승려 탄선과 그의 밑에서 의녀로 일하는 소비, 역병이 도는 마을에 방문했다가 인연이 닿아 알게 된 노중례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려 후기 탄선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의술을 배웠지만 이성계가 혁명을 일으키며 조선을 건국하자 역도로 몰려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고려와 조선의 두 왕을 섬길 수 없고 그렇다고 역모를 꾀할 수도 없어 스스로 승려의 길을 선택한다. 자신의 유일한 특기인 의술로 활인서에서 가난한 병들 이들을 도와주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한 탄선과 어릴 적 무녀의 집에 버려졌지만 영특함과 총민함을 일찍 발견한 무녀가 아이를 탄선에게 맡기며 의녀로 성장한 소비, 벼슬을 걸을 수 있는 집안 자제로 태어나 생원에 급제했지만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자결함으로써 역모에 몰리며 가족들이 관노비로 전락해버린 노중례, 탄선과 반대로 미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함께 의술을 배웠지만 조선 건국 시점에 왕실에 잘 보여 왕실 어의가 된 양홍달과 중례의 아버지를 자결로 위장하여 죽이고 집안을 몰살당하게 한 동지총제 정재술 등 부모가 죽임을 당하고 누명을 쓰거나 역모로 몰려 상처를 받은 주인공들과 얽히고설켜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비록 지금은 천한 신분인 의녀와 오작인이란 신분이지만 그들 모두 양반의 피를 가진 존재로 말 못 할 사연과 아픔을 겪고 있었으니 무뢰배로 등장하는 정재술의 아들과 소비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는 세종과 노중례가 앞으로 어떤 관계로 이어질지 자뭇 궁금해지는 가운데 성년이 되도록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던 소비가 자신의 부모와 조부가 누구인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어질 하편의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지만을 않기를 조심스럽게 바랄 뿐이다.
이미 조선왕조실록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박영규란 이름 앞에서 소설 속 조선시대 상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매끄러워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는데 실존 인물들과 가상의 이야기들이 실제의 이야기인 듯 펼쳐져 영화 한 편을 숨 가쁘게 보는 듯 생생하게 다가와 더욱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중례는 아버지의 누명을 벗길 수 있을 것인가? 소비와 중례는 어떤 인연으로 끝맺음하게 될까? 중례 못지않은 사연을 가진 소비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왕실에서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갈지 이어질 내용이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