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다큐멘터리에 일본 우에노공원의 홈리스 생활을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어릴 적에 봤던 기억이라 햇수만 따져도 엄청 오래된 영상인데 영상만큼 놀라웠던 것은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앞서가던 일본 이란 나라에 집이 없어서 파란색 타포린백 같은 천막을 씌워놓고 생활하는 그들이, 잘 사는 나라임에도 비나 눈을 피할 집이 없어서 거지처럼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도 충격적으로 다가와 꽤 오랫동안 잔상이 남았던 것 같다.

일단 노숙자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른다는 것과 도와줘야 한다는 배려라고 할 수도 없는 어쭙잖은 생각이 그들에게 과연 어떻게 비춰질까의 문제와 눈앞에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내가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라는 복잡한 감정 때문에 사고가 마비되는 듯한 기분을 여러 번 느끼게 되는데 유미리 작가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노숙자가 된 주인공의 삶을 통해 평범했던 평범한 사람이 공원에서 노숙자가 되기까지의 일들을 잔잔하게 담아냈지만 그것이 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켜 꽤나 괴롭고 아프게 다가왔다.

황태자비가 아이를 출산했다는 라디오가 흘러나올 때 주인공의 아내도 아이를 낳아 황태자비가 출산한 아이의 이름 중 한 글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줬지만 오랫동안 뒷바라지하며 이제야 겨우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 느닷없는 아들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아내는 넋이 나갔고 남매가 장성할 때까지 돈이 되는 일을 하느라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를 오래인지라 죽은 아들의 영정사진을 보며 어릴 적 타고 싶었던 놀이 기구를 태워주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자주 보지 못해 서먹했지만 비행기가 타고 싶어 용기를 내어 타고 싶다고 했던 아들의 바람은 돈이 없어 차마 태워주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짓게 만들었던 기억이 아버지의 마음을 후벼판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반납하고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야 했던 인생, 불현듯 정신을 차려보니 아들은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고 곁에 있던 아내도 자고 일어나니 싸늘한 시신이 되어 홀로 남아있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돈을 버느라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세월만 흘러 삶이 너무도 허무하게 느껴지는 마음이 잔잔한 글 속에서 너무도 가슴 아프게 다가와 보통 사람들이 애환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우리 주변에 너무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순진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모르던 사람들의 일생, 하지만 뒤돌아보니 가족과의 유대감은 이미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멀어져있고 적정 나이가 되면 온 정성을 쏟아 일했던 일터에서 매몰차게 물러나야 하는 상황 등은 비단 소설 속 주인공한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느낄 허무함과 인생에 대한 공허함이 절절히 느껴져 몰입할 정도로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으나 전쟁 후 일본 부활을 위한 도쿄 올림픽과 황궁 근처의 우에노 공원이 노숙자들의 안식처가 되어 등장하는 이야기는 사회 격차를 극명하게 비추고 있어 소설을 덮고도 씁쓸한 마음을 오랫동안 곱씹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