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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 dele 1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평점 :
당신이 죽은 후, 불필요한 데이터를 삭제해드립니다.
어디에서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없지만 유타로가 모아놓은 명함 뭉치 속에 자리 잡고 있던 dele.LIFE(디리 닷 라이프) 명함을 통해 백수였던 유타로는 디리 닷 라이프에 고용되고 불편한 몸 때문에 현장을 뛰지 못하는 회사 대표 케이시를 대신해 디리 닷 라이프에 자신의 디지털 데이터를 지워달라는 의뢰인의 생사를 확인하는 일을 맡게 된다.
디리 닷 라이프는 의뢰인의 컴퓨터나 핸드폰이 정해놓은 기간 동안 작동하지 않는 경우 자신이 죽은 것으로 간주해 데이터를 지워달라는 의뢰인들의 의뢰를 받아 그들이 지우고 싶어 하는 데이터를 지워주는 것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설정해 놓은 기간 동안 노트북의 배터리가 나가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의뢰인이 죽지는 않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기를 작동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에 이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일을 유타로가 직접 확인하며 케이시는 의뢰인들의 데이터를 지우는 것으로 일을 분담하고 있다.
지우고 싶은 데이터를 지워준다는 설정도 참신하게 다가왔지만 디리 닷 라이프에 의뢰한 이들의 사연도 다양해 아직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한편 한 편마다 드라마를 보는듯한 생생함이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굳어진 다리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케이시,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없으며 오로지 컴퓨터만 보며 생활하는 케이시와 같은 건물에 변호사 사무실을 꾸리며 당찬 이미지로 세상을 살아가는 누나 마이,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 이후 가족이 붕괴되어 아픈 기억을 간직한 유타로가 의뢰인들의 다양한 사연만큼 그것을 대하는 모습 또한 다채로워 지루할 새 없이 읽게 된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아이와 아내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다쿠미와 대기업 종합건설회사의 이사였고 고문까지 지냈던 노인이 감춰뒀던 사연, 어눌하고 못생긴 외모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 스토커라는 인상을 풍겼던 의뢰인이 실은 스토커가 아니며 자신의 성격을 이겨내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부인이 삭제하려던 데이터를 담은 이야기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가 숨겼던 엄청난 가족사를 담은 이야기까지, 냉정하며 자신이 맡은 데이터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지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케이시와 죽은 이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서라면 삭제할 데이터를 봐야 한다고 우기는 유타로의 갈등 또한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 있다.
참신한 소재만큼이나 의뢰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던 디리!, 백야행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야마다 다카유키'가 케이시 역할을 맡아 드라마화되기도 했다는데 아직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왠지 야마다 다카유키의 케이시 역할은 절묘한 선택이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