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리커버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해냄 / 눈뜬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

 

  

책장을 쉽게 넘기며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다.

이미 다른 소설을 통해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체험해봤기에 이 책을 읽기 전 나름 어떤 의식 같은 각오를 하고 펼쳐들었지만 역시나 쉽지 않은 문체 앞에 나는 정신을 더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재미없지도 않아 속도가 느리지만 습관처럼 책을 펼쳐들어 읽게 되는 소설인데 <눈먼 자들의 도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오래전 영화를 기억하고 있어 그럼에도 무난하겠다는 약간의 안도감이 있었지만 전편을 읽지 못했다고 해도 큰 무리가 따르는 소설은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아침부터 비가 퍼붓는 날은 공교롭게도 선거날이었다. 민심이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좌익정당, 중도정당, 우익정당은 그저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 투표날을 맞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 누군가 투표가 망했다며 호언장담한 것이 현실이 되어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며 총리가 발표하기에 이르고 그렇게 다시 투표가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83%가 백지 투표로 쏟아져 나오며 권력자들의 분노를 사기에 이른다.

전무후무한 이 사태를 권력자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00명 중 83명이 백지투표를 한 상황을 권력자들은 여러 가지로 분석하는데 해외 또는 조직과의 모종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에 이르지만 모순적이게도 직접 투표에 참여한 국민들의 의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면 권력자들은 반성하고 그것을 정치적 발판으로 삼아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고 앞으로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권력자들이 하는 짓이란 게 고작 백지투표를 낸 국민들을 추출해내는 일이었으니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어째 낯설지 않다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백지투표는 결국 계엄령 선포로 이어지며 권력자들은 국민들을 두고 다른 곳으로의 대이동을 시작한다.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너희들끼리 지지고 볶다 보면 권력자들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될 테고 무방비로 버려진 도시에 남겨진 국민들은 결국 권력자들에게 엎드리며 그들을 다시 찾게 되기란 전략인데 어째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이 모양인 건지 이 나라건 저 나라건 권력자들이란 인간이 하는 짓은 왜 이리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건지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권력자의 이동이 이어지고 무방비 상태로 남은 국민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비웃음조차 아까울 정도로 비열하고 유치하기까지 한 그들의 발상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어떻게 이어질까 궁금해서 더디지만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는데 나름 속 시원한 한방을 염원했건만 소설은 답답함만 가득 채운 채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것이 소설만이 아닌 현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더 답답함이 배가 되었던 것 같은데 알면서도 속 시원한 한방이 있었다면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뭔가 가슴은 조금 후련했을 텐데 소설은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어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를 얹은 느낌만 가득하다. 생각해 보면 백색 투표에 대한 반응으로 계엄령 선포라는 것 자체가 이미 무엇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지, 아마 현실에서도 같은 마음이 되어 이번엔 저번과는 다르겠지 하며 정치인들을 골라내는 우리의 모습과 또한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함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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