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숨쉬기조차 힘든 강렬한 뙤얕볕 아래에서, 비가 내리는 도로 모퉁이에서, 한겨울 강추위가 휘몰아치는 주택가 담벼락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사회,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처음 봤을 땐 꽤 복잡한 심경이었는데 이제는 주변에 너무도 많이 마주치게 되어 어느샌가 무덤덤해진 느낌이 없지 않다.
젊은 시절엔 늙어서까지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과 그렇게 나이를 먹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나이가 들며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 나태했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덥거나 추운 바깥에서 그렇게 고생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노인들이 비루해지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복지는 더디며 국가를 믿고 나의 노년을 맡기기에는 불안요소가 많은 현실이기에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란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다.
<가난의 문법>은 폐지 줍는 노인들, 거기에서도 노인 여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보통 폐지를 줍는다라고 표현하지만 이 책에서는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란 명칭을 사용하며 거친 현대사를 거쳤지만 사회보험에서 제외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세대의 여성 노인인 '윤영자'라는 가상인물의 하루 일과를 통해 고물상과 노인들의 사각지대와 암묵적으로 그것을 용인한 사회 시스템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며 폐지를 주워도 실상 시급 3백 원대 밖에 되지 않고 그조차도 노인 여성은 힘적인 부분에서 노인 남성에게 밀릴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집에 밥을 차려줘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엔 노동의 강도와 심리적으로 작용하는 고통이 더욱 큰데 책에서는 노인 여성의 비중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집 밖에 나가면 의외로 중년층의 남성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 일할 노동력은 되나 일자리가 없는 현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다.
OECD 가입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높은 한국의 현실은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정년을 65세로 정해 더 이상 노동하지 않도록 법을 마련해놓고도 현실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아 엄청난 돈을 투입하며 노인 일자리를 마련하는 실정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내며 호시절도 겪었지만 그나마 장만한 집은 자식들 사업 자금으로 대주며 전셋집으로 옮기게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남편이 아프거나 투병 중인 실정에서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린 여성 노인들의 하루는 고단하기만 하다. 읽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너무 빠듯해 한숨이 쉬어질 정도인데 그들의 삶은 나와 다르다고 치부하기에 인생은 너무 빠르다. <가난의 문법>을 통해 더 이상 노인들의 폐지 줍는 일이 나와는 먼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사회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 방법을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