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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1228/pimg_7355521372780344.jpg)
작가정신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다나베 세이코 지음
아주 오래전에 읽어 내용조차 가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책을 다시 펼쳐들면 기억이 하나 둘 되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펼쳐든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그런 작은 기대를 가차 없이 차버렸다. 원래 이런 내용이었나? 싶어 읽은 부분을 다시금 되돌아가 읽어보다 끝내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껴야 했던 9편의 단편들.
이미 영화화되어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너무 좋아해서 일본 여행 때 DVD를 사와 몇 번이나 봤던 기억이 있지만 그래서 그랬는지 영화에 가려 원작을 완벽하게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었다는 덴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짤막한 9편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것을 사랑이라 칭해도 되는 것인가란 사회적 잣대에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매몰차게 바라봐야 하지만 작가는 그런 잣대를 허용하지 않을 만큼 별거 아니라는 듯이, 돌아보면 누구나 저지르는 것이 불륜이라 놀라울 것도 없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독자들의 빗장을 무장해제시킨다. 불륜에 대한 로망이나 혹여 반대로 쌍심지를 켜고 분노하게 되거나의 상반된 감정 자체를 배제시키는 묘한 재주가 있어 등장하는 캐릭터의 감정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때론 그에 따른 미세한 아픔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오랜만에 펼쳐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허망함을 잠재워주기에 충분했다.
이복형제지만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언니의 아들과 이모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은 불장난하듯 치러진 육체관계가 주는 짜릿함과 싸한 아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런 미세한 감정이 글로 표현된다는 점은 역시 대단하다고 밖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평소 사회적 테두리의 보편타당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하며 혹여라도 그에 대한 연민이나 로망이란 감정에도 냉철하다기보다 감정 소요 자체가 귀찮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나로서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너무 강렬한 공감이나 서글픔이 너무도 잘 전달되었기에 한편씩 읽을 때마다 싸한 아픔이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단편들이 많음에도 역시 조제를 능가하는 단편은 없지 않을까란 예상을 했지만 '다나베 세이코'라는 작가의 역량을, 그 감수성을 너무도 잘 번역해 준 번역가님의 역량에 더 감동하게 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