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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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출판 /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성장하며 큰 실패를 겪지 않고 자란 쇼타는 친구들처럼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시절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졸업할 때가 되어 기업에 면접을 볼 때에도 어떻게든 취업하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일은 빌딩 청소 중에서도 유리 청소로 특화된 코스모 클리닝이란 회사에서 소속되어 하루 종일 고층 빌딩 유리를 청소하는 일이다.

벌써 1년 이상 이어온 이 일에 대한 자부심보다 옆과 위,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의 삭막함을 지닌 채 정형화된 풍경을 위해 점점 고층 빌딩의 최상층으로 향하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 뿐이다.

뭔가 즐거운 일 없이 정해진 장소로 향해 빌딩 유리창을 닦는 쇼타, 그리고 그런 쇼타 곁에는 보이지 않지만 죽은 누군가가 했던 말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형체는 없지만 영혼이 달라붙어 기억과 말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듯해 그 대상이 궁금해질 즈음 쇼타는 청소하던 빌딩 유리창 너머에 기묘한 노부인과 유리창 하나를 사이로 마주하게 된다.

노부인임에도 흰머리 하나 보이지 않으며 집안에서조차 하이힐을 신고 있는 모습은 기묘함을 자아내는데 그렇게 하루의 일을 마친 쇼타는 웬일인지 낮에 보았던 노부인이 살던 빌딩으로 향하고 엄격한 체크를 거쳐 노부인과 대면하게 된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친 찰나의 눈빛에서 쇼타는 노부인에게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쇼타의 방문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노부인의 행동 또한 이해할 수 없게 다가오기는 마찬가지다.

쇼타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구는 노부인은 쇼타에게 그가 일하는 유리창 너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 사생활 침해라는 범죄에 해당하는 위험한 부탁임에도 쇼타는 노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채 두둑한 사례금까지 받아 영상 촬영을 할 카메라까지 구입하게 된다.

높은 빌딩에서 목숨을 걸고 유리창 닦는 일을 하는 쇼타, 그가 찍어온 사진을 보며 흡족해하는 노부인,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만 훑었을 때는 대학을 졸업해서도 일자리를 찾기 힘든 젊은 세대들의 좌절과 고난을 그린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높은 건물 안에 갇힌 고립된 인간상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 순간 상식을 무너뜨릴 만큼 흐려진 판단력은 철저히 고립된 인간들의 상실을 보여주는 듯해 무겁게 다가와졌다.

"고층 맨션이란 곳은, 밖은 얼마든지 보이지만

안은 전혀 보이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위에도 아래에도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사람은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의 모습은커녕 인기척 같은 것조차 느낄 수 없지요.

정말로 도쿄의 빌딩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요.

어때요,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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