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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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 다시 로크먼 지음

얼마 전 남편이 틀어놓은 드라마를 생각 없이 보다가 화가 치밀어 바로 채널을 돌렸던 적이 있었다. 아이를 낳은 엄마들이 몸조리를 위해 머무르는 산후조리원에서의 풍경을 드라마에 담은 듯한데 그래서 꽤나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는 내 예상은 영화 설국열차에서 따온듯한 1등 칸 엄마, 꼬리 칸 엄마로 나뉘는 설정에서 급기야 꼬리 칸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유를 나눠줘야 한다는 대사에는 '이 드라마 작가가 남자인가?'라는 생각에까지 미칠 정도였다. 이어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멋진 저녁을 사주는 장면까지는 좋았으나 그것 때문에 아이 모유 줄 시간이 늦어버렸는데 엄마가 올 동안 아이를 안고 있던 간호사의 대사는 트럼프의 망발만큼이나 분노 게이지를 솟구치게 해 왜 이렇게 드라마가 시대착오적이며 쓸데없이 모성만을 지나치게 강요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한두 장면만 보고 그 드라마를 판단하기에는 섣불렀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내가 봤던 그 장면에선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뿐이었다.

엄마이기에, 아이를 양육하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엄마이기 때문에 더 화가 났던 것이리라. 최근에 가장 크게 화를 낸 게 그 드라마를 보면서였던 것 같은데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또한 읽는 내내 울화통이 터져 폭발할 것 같은 심경을 느껴야 했다. 미혼 여성이 보면 '이래서 어디 결혼하고 아이 낳겠어? 그럴 여력도 없지만 그냥 혼자 사는 게 속 편하지'란 생각을 수천 번도 넘게 했을 것 같다. 기혼 여성이며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라면 구구절절 다 공감할 수밖에 없으며 지치고 힘들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엄마이기 때문에, 자고로 엄마란 그런 것이라는 사회적 풍습과 모성 강요로 인해 참고 견뎠던 그 모든 것들을 책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알고 있는 것이기에 화가 났고 그동안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달라 아이가 엄마를 더 찾고 엄마가 아빠보다 더 양육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인체 진화론적 이야기는 결국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였다는 것을 보면서 어디까지 농락되었던 걸까? 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애초에 뇌 구조가 달랐다기보다 엄마가 아이를 더 많이 양육하기에 그렇게 보였을 뿐 아빠가 양육하는 시간을 늘리면 뇌구조 자체가 변화한다는 사실은 애써 감추었던 듯하다. 모든 것을 인내하고 감수하며 아이를 키워냈던 부모님 세대가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그렇게 아이를 놓고 대립하다가는 가정이 올바로 돌아가겠냐며 쓴소리를 하겠지만 그런 약점을 파고들어 남자들 편할 대로 휘둘리며 힘겨워한 시간들을 생각하면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책은 남녀가 함께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신은 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희생하며 양육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2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남자들에게는 그저 별거 아니고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사는데 왜 유독 나의 아내만 저렇게 힘들다고 안달복달하는지 이해가 안 갈 뿐인 양육을 예로 들고 있지만 은밀하고도 오랫동안 지속된 이러한 성차별은 너무도 깊숙이 배어 있어 얘기하자면 끝도 없이 딸려 나올 것들 투성이다.

동양보다 양육에 있어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예도 이러할진대 나의 주변을 돌아보면 무엇하나 싶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남녀 모두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은밀하고도 달콤한 말로 자행되었던 성차별의 뿌리가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지 따라가다 보면 놀라움의 연속이 될 테니. 아마 이 책을 읽는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임기임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온전히 여성 개인의 이기주의며 이는 국가 존립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어른들, 더욱이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한 번은 덜 듣게 되지 않을까, 지금 당장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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