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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지만 겉으로 표현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나 불편한 느낌을 한껏 풍기는 '음탕함'이란 표현은 본능을 거스르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정숙하지 못하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것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에 대놓고 표현하거나 일 텐데 '찰스 부코스키'는 그만의 확고함으로 후자의 방법을 택해 글을 풀어내고 있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이란 제목을 접했을 때 인생을 살아온 연륜과 지혜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글을 상상했더랬다. 하지만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날것 그대로의 글자들에 적잖은 당혹감을 느꼈다.
섹스와 동성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삶, 여자, 여자, 여자, 맥주, 맥주, 맥주, 음주운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아편굴 같은 캄캄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섹스, 섹스, 섹스......
계속 읽어나가다가는 내 머리가 이상해지거나 이 분위기에 취해 염세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슬슬 걱정이 되면서도 당시 시대를 바탕으로 한 쓴소리도 만나게 되어 그저 술에 절어있는 고주망태는 아니란 생각이 함께 들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 앞에 백인과 흑인의 대처법과 그것을 바라보는 찰스 부코스키의 일갈, 내일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현재의 삶에 미치는 파급력은 그저 개미 오줌만큼이라 술에 절어 회사에 지각해도 그만, 잘려도 그만인 그의 생활은 더 이상 위태롭게 다가와지지도 않는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만나는 친구들, 그중엔 '찰스 부코스키'의 글을 읽고 매료되었다며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고 본인이 먼저 자신을 내세우며 알아주길 바라지는 않지만 누군가 먼저 알아봐 주는 것에는 또한 크게 싫어하지 않는 포즈를 취한다. 여자 앞에서는....
호불호가 갈릴만한 글이다. 어지럽고 도대체 내가 뭘 읽고 있는지 중간중간 정신줄을 잡아야 할 만큼 혼란스러운 글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마치 퇴폐적인 영화를 내내 보고 있는 것처럼 울렁거림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건 글도 뭣도 아닌 쓰레기야!'라며 책을 덮진 못했다. 비슷한 분위기의 글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지만 그래서 울렁거리고 무던해지는 느낌도 살짝 들지만 그럼에도 중간에 책을 덮을 순 없었다. 지켜보자는 심사도 아니었고 어디까지 가나 궁금증이 들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글 속에 풍기는 매력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이었을까 책을 덮을 수 없었던 이유가....
그가 살아갔던 방식에 안쓰러움과 동정심을 느꼈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강인한 척하지만 대부분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 글에서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은 슬픈 느낌도 있지만 뭔지 모를 이런 느낌들 때문에 기억에 남는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거칠고 음담패설에 가까운 그의 글이 당시 시대상과 충돌하면서 팬층이 생겨난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