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깊이 있는 문장들이 종이 위를 적시고
독자는 가슴에 와닿는 구절들에 가슴이 젖어든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해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독립서점에서 5년간 스테디셀러에 머물며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라 한다.
문장의 깊이가 다르다 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 책이구나 싶었다.
일상에 대한 상념들, 폭력적인 사랑과 이별 후에 오는 잔잔함들,
이따금씩 찾아와 잠 못 이루게 만드는 기억들은 누군가에겐 그 자리에 머물며 한발 작도 나오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그럼에도 따뜻하고 고마운 기억을 남기며 괴로웠던 기억을 지우는 강력함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따뜻하고 고마운 기억이 남았다면 부디 행복하라며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 테지만
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겼다면 같은 이별을 겪고도 같은 마음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으로 시작했어도 동일하지 않은 사랑의 무게는 각기 다른 기억과 복잡한 감정만을 지닌 채 이별에 다다르며
그것을 추억하는 우리들의 자세 또한 제각각이라 사랑과 이별, 일상에 대한 무료함들은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감정을 토해낸다.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문장으로 탄생할 때
그것을 마주하는 독자는 묘하게도 위로받거나 공감하거나 차분해진다.
간혹 문장들이 주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 구절 한 구절을 마주하다 보면 그 또한 녹록지 않았던 글쓴이의 상처가 보이고 나만 힘들어하는 건 아니라는 위안을 받게 된다.
그렇게 위로받고 그렇게 공감하며 그렇게 다시 몸을 일으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글이, 문장이 주는 힘은 그렇게 타인으로 하여금 삶을 재정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고
깨달음을 주며 허물어져가는 울타리가 견고해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처음 만난 작가지만 또 다른 사유의 깊이가 느껴져 책장 한편에 두고 생각들이 어지러워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꺼내 읽고 싶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