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라는 타이틀로 그 어느 시대보다도 치열해 격변의 100년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을 60인의 인물을 통해 지나온 과거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모색하는 내용을 다룬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독립운동가에서부터 종교와 철학, 문학, 역사, 정치, 법, 경제, 사회, 여성, 자연과학이란 주제로 각 주제를 대표하는 인물들 60인을 통해 그들이 지나온 세월을 밟으며 현재의 중요성과 달라질 미래를 관철시키고 있다. 저자의 소견을 조심스럽게 밝히며 한 인물에 대한 치우친 편향보다 그 인물에 대한 비평가들의 찬반된 평을 내놓음으로써 양쪽 생각을 고루 취할 수 있는 형식이라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첫 등장인물로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가 등장하며 안창호,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의 '서간도시종기'를 통해 남편인 이회영에 가려져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라를 잃자 가산을 정리해 만주로 향한 남편을 따라 뒤에서 묵묵히 도움을 주고 옥에 갇힌 남편 대신 삯바느질을 하며 생활비와 독립운동자금을 모았던 그녀의 일대기는 요즘 시대에 가부장제에 얽매인 여성상으로 비춰 자칫 왜곡될 수도 있지만 시대성을 반영한다면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양반으로 태어나 그런 삶을 버리고 힘든 선택을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비록 지아비의 선택에 따랐다고는 하나 그녀 자신에게도 쉽지 않았을 결단이었을 것이기에 '서간도시종기'를 제대로 읽고 싶어졌다.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만큼이나 <문학 : 시> 편에 등장하는 박노해 작가의 시는 꽤나 강렬해 기억에 오래 남는데 엘리트 수순을 밟아가며 지식만을 머릿속에 욱여넣어 결국엔 탁자 위에서 잘난 척 대잔치만을 벌이는 지식인들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노동의 경험이 진하게 배어 있어 문장 하나하나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가진 게 없어 모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됐던 시절, 억압은 당연했고 인권이란 말은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던 바로 그 시절 박노해 작가의 글이 주는 강력한 공감과 위로와 한탄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이들의 하루보다 그들과 견줄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의 하루가 녹아있는 글들이라 더 마음에 와닿았으리라.
<정치가와 나라 만들기> 부분에선 이승만과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데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는 빈말이라도 좋은 호감을 가질 수 없었기에 거론된 여러 이야기를 훑어볼 수밖에 없었다.
관심이 있던 분야나 존경하는 인물이 등장하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역시 관심이 미흡했던 부분에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들의 일대기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역사와 사회와 문화와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갔던 이들의 이야기를 두루 살펴볼 수 있어 언젠가 아이에게도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