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정신 / 침묵 박물관 / 오가와 요코 장편소설

옷 몇 벌과 필기도구 몇 개, 면도기 세트, 형이 준 현미경과 어머니의 유품인 '안네의 일기'가 들어있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 챙겨들고 의뢰인이 사는 마을에 도착한 박물관 기사는 의뢰인이 사는 거대한 저택의 규모에 압도된다. 하지만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은 의뢰인 노파와 손녀처럼 보이는 양녀, 저택일을 봐주는 정원사와 가정부가 다여서 저택은 구석구석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옛 명성과 흉물스러운 모습을 동시에 지닌 묘한 모습을 안고 있다.

오래되고 거대하지만 구석구석 낡아빠진 저택의 모습만큼 기괴하고 괴팍한 성격의 노파와는 첫 만남부터 쉽지 않았지만 박물관 기사는 그렇게 저택에 채용되어 노파가 평생 모아온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노파가 십 대 시절 정원사의 증조부가 쓰던 전지가위를 시작으로 모으게 된 유품들은 노파의 나이만큼 상당한 양이었고 유품에 깃든 주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는 분류하고 보존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노파가 모은 유품들의 사연을 구술하면 기사가 받아 적고 소녀가 정서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도중 마을 의사가 죽는 일이 발생하고 몸을 움직이기 힘든 노파 대신 기사가 의사의 집에 방문해 그의 일생과 연관된 유품을 가져오기에 이른다.

죽은 이들의 유품을 정리하고 보존하여 방치된 마구간에 유품들을 전시해 박물관을 만들려는 노파의 바람은 느리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는듯했으나 폭발물 사건이 일어나 소녀가 다치는가 하면 50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과 유사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마을에 발생하면서 죽은 이들의 유품을 훔쳐 정리하는 일을 했던 기사가 살인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된다.

조용한 마을에 폭탄이 터져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하고 50년 전 매춘부의 유두가 잘린 끔찍한 살인사건이 최근 연달아 발생하는 와중에도 저택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도 유품 정리는 느리지만 묵묵히 진행되어 나갔고 마구간 개축공사도 끝나 마을 사람들의 유품만을 전시해놓는 침묵 박물관의 개관이 멀지 않은 어느 날, 기사는 저택 사람들의 기묘함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박물관을.....?"

"무엇 때문이냐고? 모든 박물관에 교훈적인 존재 이유가 필요해?

물건을 보존하고 싶은 건 인간의 가장 소박한 감정 중 하나야.

고대이집트 시대부터 사람들은 신전에 전리품을 늘어놓고 기쁨을 만끽했지."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어.

내가 늙으니까 세상도 늙은 것처럼 느껴지니 참 이상하지.

사람들은 계속 죽어.

하지만 그때마다 친구 흉내를 내면서 장례식장에 가거나 한밤중에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도 이제 이 부실한 다리로는 힘들어.

앞으로 유품 수집은 자네 일이야.

박물관 건물은 후원의 마구간을 개조해서 쓰면 돼.

공사는 정원사가 맡아서 해줄 거야.

이 애를 조수로 쓰도록 해.

명심해, 우리의 박물관은 늙은 세상의 안식처가 될 거야."

아주 오래전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통해 알게 된 작가 '오가와 요코',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라 잔잔한 내용의 소설이란 느낌만 강하게 남아 있는데 <침묵 박물관>을 읽으며 같은 선상의 잔잔함이 느껴져 그때의 느낌도 다시금 되살아났던 것 같다.

처음 방문하게 된 작은 마을의 거대한 저택, 괴팍한 성격의 저택 노파와 그런대로 합을 맞추며 그녀의 소망이 담긴 침묵 박물관에 놓일 유품들을 정리하던 기사에게 이야기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침묵 전도사의 수행과 폭발 사건, 50년 만에 일어나기 시작한 젊은 여성의 살인사건은 변함없는 이들의 일상에 작은 파동을 던져주지만 정작 그런 와중에도 글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최대한 절제되어 있어 독자로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젊은 여성의 유두만 잘린 채 발견된 살인사건이 연속해서 등장하지만 그럼에서 오는 두려움과 공포는 느낄 수 없다. 경찰들이 기사에게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밤 무엇을 했는지 몇 번 묻는 게 다인 이 상황에서 기묘함과 위화감만을 잔뜩 느끼며 어딘가에 있을, 이제 곧 밝혀질 살인자를 알기 위해 후반부에 몰입했던 것 같지만 결국 왜 그런 살인이 벌어졌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소설은 끝나고 만다.

아, 이 감정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책을 덮었다가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었다가하면서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에 빠져들게 하는 <침묵 박물관>

한참이나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 띠지에 쓰여있던 글귀에 저절로 무릎을 치게 되는 '요가와 요코 그로테스크 미학의 정점'이란 글이 이 감정을 정리해 준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