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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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 심판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 '아나톨 피숑'은 건강을 생각해 이중필터가 있는 맨솔 담배를 피웠지만 그것은 결국 폐암으로 이어졌고 수술 중 심정지를 겪으며 천사들이 방청석에 앉아있는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아나톨은 자신이 미처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수술을 이겨냈다고 생각해 환희에 차 있지만 아나톨의 오랜 수호천사이자 변호사인 카롤린은 그런 아나톨의 모습에 실은 생과 사를 오가는 중이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 그들을 보며 검사인 베르트랑은 아나톨에게 아직 목숨은 붙어 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며 살더라도 두 눈과 귀를 실명해 서있는 것조차 어려운 삶을 살아갈 거라 말해 아나톨이 지상으로 내려가려는 의지를 꺾는다.

그렇게 아나톨은 지상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영혼 번호 103-683으로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심판대에 오른 아나톨은 후회와 회한, 실망이란 감정이 느껴지지 않냐는 판사 가브리엘의 물음에 너무 일찍 죽은 게 아쉽다며 자신은 좋은 학생이자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좋은 가장, 좋은 가톨릭 신자였다며 소회를 밝힌다. 하지만 이에 검사 베르트랑은 아나톨이 어릴 적 친구를 괴롭혔던 영상과 아내와 아이들에게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했던 영상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나톨에게 진정으로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좋은 가장이 아니었던 삶보다 더욱 나쁜 건 연극인이란 꿈을 접으며 안락한 삶에 안주하며 살았던 아나톨 바로 자신이라는 일침을 가한다. 이에 아나톨의 변호사인 카롤린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한 기로에 서 있던 아나톨에게 한번 만났지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나타나 책임지기 위해 사회적으로 안락한 직업이었던 판사를 선택했노라며 항변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충만하지만 지나치게 일에 몰두한 결과 아내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아이들과는 다정한 대화 한번 나누지 못해 방치했으며 공명하게 처리해야 할 판사란 직업에서 공정하지 못했던 판결을 내리는 등 그가 살아왔던 모습들을 까발리며 꿈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재미없는 삶에 안주하며 살아온 것이 죄라고 지적하는 검사와 아나톨 역시 여느 보통의 가장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노라 주장하는 변호사의 팽팽한 대립 속에 아나톨이란 한 사내의 인생을 그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지상에서 큰 중벌이라 일컬어지는 살인이나 강도 등의 이유로 심판대에 선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아나톨이란 인간에 대한 심판을 담은 소설이기 때문에 뭔가 크게 동요할만한 감정에 치우칠 일은 없으나 아나톨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이야기라 점점 나이 탓을 하며 미리 안될 거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일이 늘어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이어져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귀찮다고 미루기만 했던 질문에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소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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